개인적이고 독립적인 행복추구권

by 문혜정 maya








개인적이고 독립적인 행복 추구권










나는 원래 글을 쓸 때 무엇을, 어떻게 쓸지 오래 고민하고 머릿속에 완벽히 딱 정리정돈을 하고 그것을 짜임새 있게 써 내려가는 작가 타입이 아니다. 어느 날 갑자기 꽂힌 하나의 단어나 주제에 '삘'을 받아서 빙의된 듯 쓰는 타입이라 그놈의 '삘'이 오지 않으면 글을 쓸 수 없다.

그런데 '행복'은 나답지 않게 오랫동안 고민하고, 때에 따라, 나의 인생의 흐름에 따라 이렇게 저렇게 수정을 하기도 하면서 내 안에서 조금씩 정립되고 있었던 주제라 생각보다 '삘'에 기대지 않고 글을 쓸 수 있었다. 짜임새까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쓰면서 생각하는 게 아니라(보통은 그랬음) 생각하고 있었던, 머리와 마음에 채워지고 있었던 것을 글로 모았다. 지금의 내가 행복하려면 무엇이 필요 없고, 무엇이 필요한가에 대해 현재 나의 시점에서 한번 정리해 보려고 이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세상에 이미 존재하는 수많은 행복론들이 되게 그럴싸하고, 멀고, 어려운 이야기들을 하는 것 같아서 나는 내 개인적인 이야기와 아주 사적인 고찰을 해보고자 했다.



그렇게 몇 편의 글을 써 내려가다가 문득 깨달았다. 내가 '행복'을 바라보는 시각을.

나는 '000를 하면 행복해'라던가, '000가 있으면 행복해'가 아니라, '000가 없으면 행복해', '000를 하지 않아야 행복해'라는 글을 쓰고 있었다. 긍정적인 것을 추가하는 게 아니라 부정적인 것을 제거하는 것이 내가 행복에 접근하는 방법이었다. 그래서 초반에 쓴 글들은 '000의 문제'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무려 7가지나 된다. 내가 행복하기 위해 처리해 버려야 하는 것들이.

인생을 보는 관점이 너무 부정적인가? 싶어서 그 후에는 행복을 위한 긍정적인 조건들을 찾기 시작했다. 그렇게 찾아낸 4개의 이야기는 앞의 7개의 이야기를 쓸 때보다 훨씬 오랜 시간이 걸렸다. 똑같이 7개의 이야기로 맞춰주고 싶어서 계속 생각해 봤는데, 4개의 이야기를 쓰고 나니 더 이상은 떠오르는 게 없었다. 억지로라도 어떻게든 써볼까 하다가, 이 글의 주제가 '행복론'이라는 것을 떠올리고는 멈췄다. 더 쓰는 게 행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제가 '행복'인데 행복하지 않은 상태를 참아가며 뭔가를 더 이어간다는 게 굉장히 위선적인 것 같았다.



그래서 행복'을 주제로 총 11개의 이야기가 나왔다. 그 누구의 행복도 아닌 나 한 명을 위한 '행복'에 대한 탐구였다. 나는 언제나 나 자신에게만 관심이 있었다. 타인의 행복은 그 사람이 생각해야 할 몫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행복한 삶을 살기도 바쁜데 왜 내가 남의 행복까지 함께 고민해 주어야 한단 말인가. 그리고 응당, 하나의 인생을 책임지고 있는 개인은 자기 자신의 행복에 대해 깊이, 그리고 자주 고민해야 할 의무가 있다. 공짜로 삶이 주어진 이상 그 정도의 의무는 지고 살아야지. 그게 삶에 대한 예의이다. 내 기준에서는.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 나온 행복에 대한 탐구는 철저히 '나'라는 사람에 대한 관찰과 관심과 연구에서 나온 것이고 그것을 다른 누구, 다른 개인의 삶에 그대로 적용시킬 수는 없다. 왜냐면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니까.

누군가에게 '행복하려면 이렇게 해야 해!'라는 가르침을 주기 위해 이런 자의식 과잉 같은 제목을 붙인 게 아니다. 나는 그냥 어떤 사람이라도 인생의 목표는 자기 인생의 행복에 두어야 한다고 생각하므로, '나는 이래'라고 먼저 이야기를 꺼낸 것뿐이다. 혹은 '나는 이런 식으로도 생각해' 정도? 누군가는 '저렇게도 행복할 수 있는 거군'이라고 생각하고 '나는 어떻지?'라고 자신의 행복론에 대한 고민을 시작한다면 이 글은 그 역할을 충분히 해낸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냥,

흔들리지 말길.

타인의 자유, 타인의 행복을 저해하거나 탐하지 않는 한 누구나 자기만의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고 행복한 삶을 꿈꾸고 꾸려갈 의무가 있다.

나는 매일매일이 행복하지는 않지만, 오히려 화나고 짜증 나고 파괴적인 날들이 더 많긴 하지만, 추구하는 바(나의 행복)가 명확하기 때문에 길을 잃더라도 돌아올 등대가 있고 가야 할 목적지가 있는 것 같다. '내 삶'을 살고 있는 것 같다.

자신의 삶을 사는 삶.
적어도 나를 아는 사람들, 내 주변의 사람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런 삶을 살고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썼다.

내 고막 남자 친구 중 한 명인 자이언티의 노래, '양화대교'에 나오는 가사가 딱 내가 하고 싶은 마지막 말 같다.




행복하자. 아프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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