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4월, 최종면접에 합격했다. 취업 성공은 내게 자유로운 여가 시간을 쥐어주었다. 대학 시절엔 학점 관리, 토익, 자격증 등에 시달리며공강 시간과 긴 방학이 주어졌음에도 제대로 그 시간을 즐기지 못했다. 그때 내가 가장 하고 싶었던 건 전공책이 아닌, 내가 읽고 싶은 책을 손에 들고 조용한 카페에서 마음 편히 독서하는 것이었다. 이제 경제적, 시간적 여유가 생기면서 나는 읽을 책을 사기 위해 자주 서점에들르기 시작했다.
책의 시작은 에세이 장르였다. 가독성이 좋아 한 자리에서 조금만 집중하며 읽다 보면 완독 하기 쉬운 분야고, 무엇보다 누군가에게 편하게 위로받고 싶을 땐 에세이만 한 게 없다. 예쁜 표지 디자인이 많아 유독 쉽게 손이 갔던 것 같다. 또한 긴 스토리 구성이 아니기 때문에 그날그날 보고 싶은 챕터만 보기에도 좋다. 완독한 에세이 책들이 쌓여갈수록 나는 다른분야의 책들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다음 장이 궁금해지는 줄거리가 있는 소설, 매번 읽을수록 떠오르는 의미가 달라지고 말장난이 예술이 되는 시집, 배경, 상황, 다양한 인물들에게 자연스레 풍부한 상상력이 동원되는 희곡과 시나리오, 인문학의 소양을 높여주는 인문 잡지, 그리고 아주 예전 사람들의 이야기임에도 그들이 살아오며 느꼈던 가치관, 철학을 통해 지금의 나에게 삶의 지혜로운 방향성을 제시하는 고전까지. 이렇게 책을 읽는 행위가 점점 좋아지면서 책 자체가, 그리고 책과 관련된 모든 것들이 나를 쾌락의 숲에 빠뜨렸다. 헤치며 들어갈수록 행복감에 빠져나오기 힘든숲.
먼저, 책은 나에게 3개의 감각에 대한 즐거움을 주었다. 첫째는 위에서 설명했듯이 글을 읽음으로써 시각적 즐거움을 주었다. 두 번째로, 나는 책의 물리적 무게감과 손으로 책장을 넘기며 느껴지는 종이의 질감을 좋아하기 때문에 촉각적으로도 즐길 수 있었다. 그래서 전자책보다 종이책을 더 선호하는 편이다. 세 번째는, 책마다 나는 특유의 냄새로후각적으로도 즐거워진다. 간혹 읽으면서 좋아하는 향을 맡고 싶을 때면 북 퍼퓸을 책에 뿌리기도 한다. 이렇게 책을 통해 느껴지는 여러 감각들이, 독서의 주의력을 분산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오롯이 독서에 빠져들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책을 사랑하게 되면서 이제 책 관련 물건들에도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마치 연예인의 팬심이 굿즈 구매로 이어지는 것처럼. 예쁜 디자인의 책갈피, 읽을 때마다 좋은 향기를 내뿜는 북 퍼퓸, 메모패드, 노트 등 다양한 책 굿즈들을 내 자금이 되는 선에서 수집하게 되면서 새로운 쾌락을 얻게 되었다. 이뿐 만이 아니다. 내가 보고 있는 콘텐츠 장르 또한 달라졌다. 예전엔 유튜브 영상으로 먹방이나 개그 위주의, 보는 동안은 즐겁지만 끝나면 여운이 없는 영상 위주로 시청했지만 요즘은 출판사가 운영하는 영상이나 서평을 남기는 영상 같은 북튜브(민음사 TV, 겨울서점, 책읽아웃 등) 위주로 보고 있어 끝나고 나선 머릿속이 기분 좋게 가득 찬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 나에게 다양한 쾌락을 안겨다 주면서 그리고 이것이 내 일상이 되면서, 조금씩 변화가 찾아왔다.
먼저, 꾸준히 할 수 있는 취미가 생겼다. 평일, 주말 상관없이 거의 매일 책을 읽으면서 자연스레 여가시간을 풍요롭게 보낼 수 있었다. 온 앤 오프의 밸런스가 맞춰지니 직장생활의 힘듦이 훨씬 완만해졌다. '오늘은 퇴근하면 무슨 책을 읽을까' 생각하면 그날 저녁이 몹시 기다려진다. 책 덕분에 주말만이 아닌 월요일~일요일 모두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취미생활을 시작으로 새로운 꿈이 생겼다. 작가가 되는 것. 내가 쓴 책이 출간되는 꿈 말이다. 사실, 10명의 사람들이 글을 써서 한 권의 책을 출간하는 책쓰기 프로젝트 동아리에 지원해 직접 책을 낸 적이 있지만 나는 한 권의 책을 오롯이 나의 글로 채우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그래서 자연스레 문득 떠오르는 문장들을 적어놓은 메모들이 넘쳐났고, 자연스레 브런치 작가 신청도 하게 된 것이다. 꿈이 생기니 좀 더 열정적인 삶을 살게 되었다.
그리고 마지막. 책이 나에게 준 가장 소중한 선물은 바로 높은 자존감이다. 독서를 계속하다 보면 정말 다양한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보게 된다. 나와 비슷한 성향의 인물을 만나게 되면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생각하며 공감과 위안을 받기도 하고, 때론 정반대의 성향을 접하고 나서 '이런 성향을 가진 사람도 있구나'라며 타인이 가진 나와의 차이를 차별화하지 않고 다름을 오롯이 인정하게 되었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이를 즐기는 순간, 높은 자존감은 따라올 수밖에 없다. 책 속에서 이런 상황들을 꾸준히 접하면서 나는 점차 내적인 성숙을 이루어나갔다.
이제 예전만큼 타인의 언어와 행동에 쉽게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물론 상대에게 상처를 받을 상황은 당연히 존재한다. 하지만 받은 순간에만 타격이 있을 뿐 시간이 지나 감정의 여운이 크게 남지 않는다.사실 나는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감정에 크게 동요하고 남들의 시선을 굉장히 의식하는 사람이었는데 요즘은 감정의 굴곡이 훨씬 더 완만해져 안정적이고 평화로운 일상이 계속되고 있다.
나는 책을 읽어야만 훌륭한 사람이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양한 경험을 통해서도 내면은 성숙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직 독서에 흥미를 가지지 못한 분들께 조심스레 책을 가까이하는 것을 권하고 싶다. 이렇게 다양한 즐거움을 선사하고 내면의 아름다움까지 가질 수 있는데 진심으로 추천하지 않을 수 없다. 혹여 이 글을 보고 독서를 제대로 하기로 마음먹은 분들이 계시다면, 꾸준히 독서를 할 수 있는 팁을 몇 가지 알려드리고자 한다. 먼저, 집 근처 서점으로 향한다. 책들을 주욱 둘러보고 왠지 어려운데 멋있어 보이고 다들 알만한 책 말고 왠지 자신이 보기에 재밌을 것 같은 책을 고른다. 꾸준함에는 흥미가 필수조건이다. 그리고 목표를 양보단 시간에 중점을 두는 것이 좋다. 글마다 난이도가 다르고 또 단순히 읽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감명 깊은 문장엔 자신의 감정을 담거나 사색에 잠기기도 하기 때문에 양적인 것에만 집중하다 보면 건강한 독서를 하기 힘들어진다. 이런 식으로 하다 보면 자연스레 독서량이 증가할 것이고, 점차 읽는 분야의스펙트럼 또한 다양해지면서 당신의 세계 또한 넓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