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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락사스

인간에게선 선과 악을 분리해낼 수 없다

by 글고운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버둥거린다.
그 알은 새의 세계다.
알에서 빠져나오려면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새는 신의 곁으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라 한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서 가장 좋아하는 구절이다. 나는 새에서는 '나 자신'이, 알에서는 '현재까지 내가 가진 세계관'이 떠올랐다. 위의 문장들을, '지금 가지고 있는 나의 협소한 세상에서 폭넓은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고난과 역경을 넘어서야 하고, 그동안 내가 가지고 있던 가치관의 붕괴 또한 피할 수 없다. 그러나 결국 이러한 고통으로 인해 성장하게 되면 아브락사스라 불리는 신과 가까워질 수 있다'라고 받아들였다. 여기서 아브락사스란, 쉽게 말해 선과 악이 모두 공존하는 신이다. 그렇기에 가장 인간과 닮아 있는 신이고 인간이 가질 수 있는 현실적인 이상향이라 수 있다. 인문학 책을 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가장 큰 깨달음을 얻었고 위로가 되었던 단어가 바로 '아브락사스'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나는 항상 남들보다 심한 도덕적 관념에 사로잡혀 있었다. 누구나 저지를 수 있는 아주 작은 실수와 잘못에도 엄청난 죄책감을 가졌다. 정작 상대방은 기억도 안 날 일을 가지고 내 입장에서 봤을 때 상처를 준 것 같다 판단하여 하루 종일 양심의 가책에 시달려야 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이기적인 생각이 들 때면, 많은 회의감과 공허감이 들어찼다. 그럴수록 자기 검열은 심해지고 나의 자존감은 낮아졌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정반대의 상황 또한 나를 도덕성의 늪에 빠지게 했다. 바로 상대가 나한테 상처를 입힐 때인데, 이럴 경우 '조금만 서로에게 둥글고 너그럽게 대해주면 안 되나'라며 안타까움과 환멸감, 인류애가 감소하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아브락사스'를 끊임없이 반추해내면서, 꽤 달라진 삶을 보내고 있다. 인간은 선함과 악함이 모두 들어찬 존재란 걸 인정하기 시작했다. 선하기만 할 수도, 악하기만 할 수도 없는 것이다. 예전에 SNS에서 어떤 사람이 무단횡단을 하면서 쓰레기를 주웠다는 글을 본 적이 있는데, 이 말이 그 의미를 잘 피력해주는 것 같다. 사람은 도덕적으로 어느 한쪽에 조금 치우쳐질 순 있어도 극단적인 가장자리에 머무를 순 없다. 그만큼 인간은 굉장히 복잡하고 입체감 있는 생명체다. 이런 깨달음을 얻은 후, 나는 굉장한 위안을 받았다. 내가 실수를 할 때 상대에 대한 미안한 감정의 솔직한 사과 및 인정, 그리고 그런 행동으로 인한 부끄러움을 느끼는 건 맞지만, 사기죄와 살인죄의 형량이 다르 듯, 잘못 보다 수십 배의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는 걸 마음으로 알게 되었고, 상대가 나한테 상처를 입혔을 경우에도 당시의 상황에선 마음이 다쳤을 순 있지만 시간이 좀 흐른 뒤엔 그 잔상만이 남아있을 뿐, 그 상처에 내가 처박히는 일은 현저히 줄게 되었다.


혹시 나처럼 이러한 착한 관념에 너무 얽매여 있다면, 오늘도 그런 일이 있었다면, 그래서 오늘 밤이 유독 잠들기 힘들다면 '아브락사스 신'을 떠올려보면 어떨까. 착하디 착한 당신들이 편안한 밤이 되길 진심으로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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