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지인분으로부터 영화 관람표를 선물 받았다. 사실 코로나의 여파로 당분간은 갈 생각이 없지만 요즘은 어떤 영화가 개봉되었는지 궁금하기도 해서 구경이나 할 겸 인터넷에 들어가 보았다. 현재 개봉 중인 영화들을 흥행 순위별로 보던 중 9위에 올라온 한 영화의 제목과 포스터에 시선이 멈추었다. '남매의 여름밤'이라니. 너무 낭만적이지 않은가. 여름밤을 배경으로 평화로워 보이는 시골의 전원주택 안에서 가족들이 오순도순 둘러앉아 있는 서정적인 분위기의 포스터 또한 내 마음을 간질였다. 나는 코로나가 잠잠해지거나 온라인 감상이 가능해지면 가장 먼저 보게 될 영화로 꼽아놓았다. 지금은 블로그에 올라온 후기를 보며 아쉬움을 달래고 있다.
그러다 문득 '우리 가족의 여름밤'이 떠올랐다. 어릴 적 부모님, 동생들과 함께 행복하게 보냈던 여름밤을.
나는 시골의 작은 전원주택에서 10대의 마지막까지를 가족과 함께 보냈다. 이사 한 번 가지 않아 그곳은 내가 태어난 순간부터 청소년기까지 수많은 추억이 담겨있는, 낡았지만 애틋한 장소였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았던 날은 초등학생 때의 여름이었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계절이었지만 신기하게도 그리운추억의 대부분을 차지한것은 그 후덥지근한 날들이었다.
무더운 여름, 초등학교에서 하교를 한 후속셈학원 공부까지 무사히마치고 학원차를 타고 집에 도착하면 대략 저녁 5~6시였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대문을 열고 계단을 두 칸씩 뛰어올라가(우리 집은 1층은 창고, 2층은 가정집으로 사용했다) 2층의 검은색 철제문을 열면 항상 엄마가 반겨주셨다.나는 신발을 대충 벗어두고 현관문을 열었다.
"다녀왔습니다! 엄마, 우리 집 너무 덥다!"
예나 지금이나 에어컨이 없기에, 나는 열을 식히기 위해 부엌으로 들어가 냉장고 문을 벌컥 열고 찬바람을 쐬었다.
"어휴, 선풍기 틀어. 전기세 많이 나와."
엄마의 작은 꾸지람을 들으면 냉동실에서아이스크림을 하나 꺼내 문 채 문을 닫고 슬금슬금 내 방으로 가 컴퓨터 전원을 켰다.게임을 정신없이 하다보면 금세 엄마의 밥 먹으라는 소리가 방문 너머로 들려왔다. 엄마, 아빠, 그리고 쌍둥이 동생들과 저녁을 먹은 후에는 거실에 둘러앉아 텔레비전을 보았다. 그러다 밖에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하면, 아직 식지 않은 집안의 더위를 피해 우리는 서로 약속이라도 한듯 다함께 옥상으로 올라갔다.
십여 년 전만 하더라도 지금처럼 열대야가 심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 가족은 슬리퍼를 질질 끌며 선선해지는 밤에 초록색 페인트가 온통 칠해져 있는 옥상으로 갔다.우리는 나란히 서서 살랑살랑 부는 바람을 맞으며 밤하늘의 달과 수많은 별들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아빠가 1층 창고로 내려가시더니 텐트를 가지고 올라오셨다. 아빠가 옥상에 쳐 주신 텐트 안에서 우리는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시원한 수박도 먹었다. 어느 날엔 만들기 좋아하는 아빠가 간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가스버너를 직접 만들어 다 같이 고기를 구워 먹기도 했다. 아빠가 마당에서 쇠 꼬챙이에 고기를 꽂아 구우면 우리는 그것을 그릇에 담아 옥상으로 가져갔다. 약간의 습함과 시원함이 함께했던 그 시절 여름밤, 텐트 안에서 다 같이 먹었던 불맛이 나는 고기가 잊히지 않는다. 배부르게 먹고 난 후에는 노곤해지며 잠이 쏟아졌다. 잠깐 누워서 선잠을 자면 엄마가 깨워 내려가서 자라고 말씀하셨던 기억이 난다. 어린 시절의 나는 이런 식으로 무더운 여름을 보냈다.
대학생이 된 후부터 직장인이 된 지금까지 타지 생활을 해오면서 우리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현저히 줄었다. 그러다 가끔 본가에 내려갔다 오면 예전의 분위기에 젖어 향수병이 심하게 찾아왔다. 도심의 여름밤에서는 보기 힘든 평화롭고 잔잔한 분위기, 저녁부터 크게 들려오는 귀뚜라미 소리와 무심히 하늘을 올려다보면 나타나는 은은하게 빛나는 달과 수많은 별들까지. 나는 이 모든 아름다운 여름밤을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