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빛과 함께하는 분위기를 사랑한다. 모든 사물과 공간이 색다르게 보이기 때문에.물건은 변한 것이 없는데 빛이 사선으로 그것들을 비추는 순간, 평소엔 관심도 두지 않았던 물건이 갑자기 내 눈에 들어온다. 예뻐 보이는 것이다. 내 방에서, 카페에서 때론 게스트하우스나 호텔에서 그런 순간들이 찾아오면, 나는 휴대폰을 들고 여러 차례 카메라 셔터를 눌러댄다.
나른한 오후, 살랑대는 바람에 아래까지 쳐둔 블라인드가 탁탁 소리를 내며 침대 옆의 기다란 창문을 때린다. 그때마다 햇빛이 내 얼굴을 비추다 안 비추다 한다. 졸음을 깨고자 블라인드를 위로 확 올리면, 금세 방 안이 환해지며 침대, 책상, 의자, 서재 등 모든 것들을 아름답게 변화시킨다. 나 또한 변화한다. 졸음이 조금 물러가고 기분이 한층 더 명랑해진다.무료했던 마음에 갑자기 의욕이 솟는다. 난 햇빛만 쬐었을 뿐인데.
카페에 왔다. 주문을 하고 빛이 잘 드는 창가 자리에 앉는다. 가져온 책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는다. 사선으로 스며든 빛으로 책의 반은 어둡고 반은 밝다. 장식용으로 놓아둔 꽃병을 책 옆에 가져와 구도를 잘 잡은 뒤 사진을 찍는다. 그러다 '아이스 바닐라라떼 나왔습니다!'란 직원분의 목소리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커피를 가져와 그 셋의 모습이 더욱 예뻐 또다시 휴대폰을 가져다댄다. 예쁜 사진이 나올 때까지 눌러대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신다. 달달한 커피에 꿀꿀했던 기분이 사그라든다. 소소한 행복을 누린다. 그런데 책은 언제 읽나. 허겁지겁 책 속에 끼워놓았던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구절이 박혀있는 책갈피를 꺼내 글에 집중하기 시작한다.간혹 힐끗힐끗 창밖을 바라보면서.
휴가를 내어 북캉스를 왔다. 창밖엔 어둠이 깔려 있고 지금 달과 별 그리고 나, 셋 뿐이다. 침대 머리맡에 있는 스탠드를 딸깍 켠다. 가방에서 책을 꺼내온다. 포근한 이불속에 다리를 넣고 책장을 넘긴다. 가끔 감성에 젖어 달빛을 바라본다. 분위기도, 내 마음도 은은하다. 한참 글을 보니 어깨가 뻐근해오고 졸음이 쏟아진다. 스탠드를 끈다. 이불을 어깨까지 끌어당겨 잠을 청한다. 꿈이 달콤하다. 별안간 새들의 지저귐이 들려온다. 아직 눈을 감고 있지만 불그스름한 배경에 아침이 온 걸 안다. 게슴츠레 눈을 뜬다. 손을 휘적대며 안경과 휴대폰을 찾는다. 11시. 몸이 개운하다. 이제야 방 안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얇은 커튼이 휘날리며 빛을 내뿜고 있다. 어젯밤 얌전히 가라앉아 있던 물건들이 지금은 에너지가 넘친다. 이부정리를 하니 먼지가 공중에 폴폴 날린다. 곧 나갈 준비를 한다. 아침의 새로운 설렘이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