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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 포레스트

'코로나 블루' 시대, 뭉근히 행복해지는 영화를 찾고 있다면

by 글고운

최근 코로나 확진자 수가 급증하면서 좋아하는 산책마저 망설여졌다. 가뜩이나 마스크를 착용해 그 시간대에만 맡을 수 있는 아침 햇살 냄새, 쌀쌀한 저녁 냄새, 비 온 뒤 축축한 새벽 공기 냄새를 포기해야 했는데, 이젠 자연 속을 누비며 사색하고 관찰하는 즐거움마저 빼앗으려 한다. 너무하단 생각이 들지만 밖은 바이러스가 득실대니 별도리가 없다. 최대한 집 안에서 이 허함을 채울 수밖에. 무얼 할까 하다 책 읽기는 나에게 일상이나 다름없어 차치하고 요즘 영화관에 발을 디딘 적이 없어 넷플릭스로 방구석 영화 관람을 하기로 했다. 나에게 '자연'하면 바로 떠오르는 영화는 '리틀 포레스트'다. 그 말인즉슨, 첫 시청이 아니란 뜻이다. 나에겐 두고두고 여러 번 꺼내 볼 만큼 자연과 평온함을 사랑하는 내 성향과 가장 일치도가 높은 작품이다.


영화는 '작은 숲'이라는 제목답게 새소리가 낭랑히 울려 퍼지는 아주 푸릇한 숲길을 배경으로, 한 소녀가 체크무늬 셔츠를 팔랑이며 숲길 사이로 자전거를 타는 풍경에서 시작된다. 그 소녀의 이름은 혜원. 그녀는 눈이 소복이 내려앉은 어느 겨울날에 답답한 서울 생활을 벗어나 어릴 적 엄마와 함께 살았던 시골집으로 내려간다.


"잘 왔어. 보고 싶었어."

남자 친구만 임용고시에 붙어버린 뒤 조용히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며 마음의 짐을 덜어보려 했는데,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 익명성이라곤 찾기 힘든 시골답게 츤데레 고모, 동네 친구인 재하와 은숙에게 집에 온 걸 제대로 들켜버린다. 고모는 다정하진 않지만 혜원이 집에 왔다는 걸 알고 난 뒤, 아침을 차려 주고 반찬도 챙겨주면서 든든한 보호자로서의 면모를 드러낸다. 친구들은 조용하고 외로운 시골생활에 활기를 더해주고, 때론 혜원이 서울에서 가지고 온 고민의 해답을 찾는 것에 조력자로서의 역할도 한다.


영화 포스터


"도시에 살다 보니까 보이더라고. 농사가 얼마나 괜찮은 직업인지. 정말 난 굉장히 멋진 직업을 선택한 것 같아."


재하 역시 한때 도시에서 평범한 직장생활을 했지만 자신의 길이 아님을 일찍 깨닫고 쿨하게 사표를 낸다. 그리고 현재는 이곳에서 과수원 일을 하고 있다. 혜원보다 먼저 해답을 찾은 재하는 혜원의 멋진 인생 멘토가 되어 준다.멋진 주사도 갖고 있다. 또 다른 친구 은숙은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란 토박이다. 지금은 농촌에서 은행원으로 일하고 있다. 도시생활을 해본 경험이 없어 혜원과 달리 서울을 동경해 재미없는 시골을 빨리 벗어나고 싶어 한다. 재하를 짝사랑하는 상큼 발랄한 캐릭터다.


"실패할 수도 있고 또 너무 늦은 건 아닌가 하는 불안감도 있지만, 이제 이 대문을 걸어 나가 나만의 시간을 만들어 갈 거야."


"그동안 엄마에게는 자연과 요리, 그리고 나에 대한 사랑이 그만의 '작은 숲'이었다."

아직 언급하지 않았지만 혜원에게 가장 중요한 인물이 있다. 바로 혜원의 친엄마다. 그녀는 아픈 남편의 간호를 위해 이곳으로 내려왔지만 결국 그가 세상을 등진 뒤에도 농촌을 떠나지 않는다. 혜원을 위해서다. 엄마는 어린 혜원에게 자연에서 나는 재료로 맛있고 건강한 음식을 만들어 주고, 흙냄새, 나무 냄새를 맡게 하며 어린 혜원이 자라 성인이 되고 힘든 일이 생기더라도 툭툭 털고 일어날 자양분을 만들어 준다. 그녀는 혜원이 독립할 나이가 되자, 부모로서의 역할을 잠시 멈추고 자신의 길을 찾는 여정을 위해 홀연히 사라진다. 혜원은 말도 없이 떠난 엄마가 밉지만, 농촌 생활이 무르익어 갈수록 엄마를 조금씩 이해하게 된다. 엄마는 마침내 답을 찾았을까.


잔잔하지만 가볍지 않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 영화의 매력포인트는 바로 계절별 음식과 영상미에 있다.


"나 배고파서 내려왔어."


혜원이 서울에서 먹었던 음식과 본가에서 해 먹던 음식은 굉장히 대조적으로 나타난다, 서울에서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했던 혜원은 폐기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우려 했지만, 상했는지 밥을 한 입 먹자마자 뱉어버린다. 또 저렴하고 빨리 나오는 컵밥을 서서 먹으며 대충 끼니를 때우기도 한다. 하지만 시골에서의 한 끼는 대충이란 게 없다. 모든 끼니가 소중하다. 정성과 시간을 들여 만든 만큼 맛과 건강 모두를 채울 수 있는 음식은 행복한 포만감을 들게 한다. 느림의 미학을 보여주는 영상이 바로 음식을 만드는 장면들이다.


이 음식들에 맛없거나 맛있는 양념을 넣어주는 요소가 바로 공간의 영상미다. 이는 서울과 농촌의 공통 계절인 겨울 장면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서울에 있을 때 지내던 혜원의 집은 아늑하지 않았다. 푸르스름하고 칙칙한 차가운 분위기의 조명을 사용해 그곳에서 먹던 폐기 도시락을 한층 더 먹기 싫게 만든다. 마음이 고팠던 혜원의 심정을 잘 보여주는 장면이다. 반대로 시골집에 내려온 후부터는 주황빛의 따스한 조명으로 물든다. 혜원은 그 집에서 직접 재료를 구해가며 정성스레 만들어 매 끼 배부른 식사를 하면서 현재의 고민에 대한 해답을 조금씩 찾아간다. 군침 도는 음식들이 여럿 나오지만, 그중 직접 만들어 먹을 수 있었던 맛있는 음식 두 가지를 소개한다.


시골집으로 내려온 첫날, 혜원은 차갑게 식어 있던 빈 집에 난로를 피우며 잠시 몸을 녹인다. 몸이 뜨끈해지니 이젠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들려온다. 제대로 만들어 먹기엔 집에 남아 있는 재료가 별로 없다. 주방을 뒤적이다 혜원은 쌀독에서 딱 한 그릇 분량의 쌀을 발견한 후 좋은 생각이 떠오른다. 그녀는 밖으로 나가 눈 속에 파묻혀 있던 파와 배추 한 포기를 꺼내 배추 된장국을 만들기로 한다. 보글보글 소리를 내며 끓어가는 배춧국은 보는 것만으로 구수한 냄새를 풍긴다. 쌀밥과 배춧국이 전부이지만 혜원에게 충분히 뜨끈한 포만감을 안겨준다.


두 번째도 주재료가 배추인데, 바로 수제비와 함께 나왔던 배추전이다. 방법도 아주 간단하다. 밀가루와 물, 배추, 소금, 찍어 먹을 양념간장만 있으면 충분하다. 배추를 밀가루 반죽에 골고루 묻힌 뒤 데워진 기름 두른 프라이 팬에 올리면 치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노릇노릇 익어간다. 완성 후 한 입 베어 물면 달짝지근한 배추의 맛과 밀가루의 고소한 맛이 느껴져 맥주 한 잔이 그리워진다.


직접 만들어 먹은 배추 된장국과 배추전.

따뜻하고 맛있는 인생 영화를 찾고 있다면 좋은 작품들을 다수 포함하고 있는 넷플릭스로 '리틀 포레스트'를 보며 자기만의 방을 작은 숲으로 만들어 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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