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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고운 Dec 27. 2020

저는 INFP입니다

배려, 평화, 내적 성장

 요즘은 조금 사그라드는 분위기지만 몇 달 전만 하더라도 MBTI 검사가 유행이었다. MBTI란, Myers-Briggs Type Indicator의 약어로 마이어스와 브릭스가 스위스의 정신분석학자인 카를 융의 심리 유형론을 토대로 고안한 자기 보고식 성격 유형 검사 도구를 한다.(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나는 평소에 심리테스트를 잘 믿지 않아 이 검사도 그저 재미로 시도해보았다. 그런데 내가 했던 심리 검사들 중 가장 과학적이고 그럴듯한 결과가 나와 나를 놀라게 했다. 16가지 유형들 중 INFP가 나왔는데, 90퍼센트 이상이 모두 내 이야기였다. 이후 MBTI를 꽤 신봉(?)하게 되었고, INFP 성향을 다루는 영상들도 찾아보게 되었는데, 생각보다 많은 INFP분들이 관련 영상에 나와 비슷한 마음을 담아 댓글로 남긴 걸 보고 괜한 동지애와 뿌듯함, 반가움을 느꼈다. 사실 내가 이 글을 쓰게 된 동기가 바로 여기에 있는데, 영상에서 내가 느꼈듯 브런치를 이용하는 모든 INFP분들께도 이런 반가움과 우리가 가진 성향에 자부심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에서였다. 서론은 이쯤 하고, 이제 INFP 성향을 가진 나라는 사람에 대해 많은 부분을 드러내고자 한다.


 먼저, 나는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를 사랑한다.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 있는 장소를 좋아하지 않는다. 여행을 할 땐 사람들이 바글거리는 명소보다는 유명하지 않지만 풍경이 아름답고 자연을 느낄 수 있는 한적하고 조용한 곳을 찾게 된다. 그래서 인적이 드문 골목길을 걷는 것도 좋아한다. 새로운 카페나 식당을 검색할 때에도 항상 앞에 '조용한'이 따라붙는다. 술집도 마찬가지다. 평소 혼술을 좋아하는 나는 가볍게 맥주 한 잔 하기 좋고 일인석이 많은 주점을 선호한다. 그렇다고 항상 혼자 놀진 않지만, 친구들을 만날 때에도 여러 명 보단 한 두 명의 단짝 친구들과 함께하는 것이 좋다. 취미도 마찬가지다. 여러 명과 해야 하는 활동적인 분야보다는 혼자 있을 때 잘할 수 있는 독서와 글쓰기, 산책을 주로 한다.


 내가 왜 소수의 사람들과 있을 때나 혼자일 때를 더 선호하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는데, INFP 성격상 유독 남을 배려하는 면을 가지고 있어서인 것 같다.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을 굉장히 싫어하는데, 혹시라도 누군가에게 상처를 준 날엔 밤새 미안함과 죄책감에 괴로워한다. 그래서 항상 말실수를 하거나 상처를 주지 않게 대화나 행동에 있어 매우 조심하는 편이다. 주변에선 그런 나를 배려심 있고 친절하며 착하다고 한다. 하지만 때론 그 칭찬이 버거울 때가 있다.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많은 사람들과 오래 어울린 날에는 배려에 온 힘을 쏟아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굉장히 피곤하다. 이럴 땐 며칠간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 에너지를 충전해야만 한다. E의 성향과 반대로 혼자 쉬어야만 체력을 회복할 수 있는 것이다.(아, 그렇다고 친한 친구들이 여러 명 모이는 것 자체를 싫어한다는 건 절대 아니다. 재미있고 좋지만 그만큼 에너지가 소모된다는 의미다)

 

 그리고 상대에게 피해 주고 싶지 않은 만큼 그들에게 상처 받는 것 또한 두려워한다. 누군가 장난스레 툭 내뱉은 말이, 나에겐 하루 종일 마음을 따끔거리게 만든다. 더욱 괴로운 건 당신으로 인해 상처 받았다고 솔직하게 말을 못 하는 것이다. 내 감성이 예민해서 남들은 아무렇지 않아 할 말을 내가 유난스럽게 받아들인 게 아닐까란 일종의 자기 검열을 하거나, 내가 갈등을 일으키고 그 상황을 못 견뎌하기 때문인 이유도 있다. 간혹 친한 사람에게 필터링 없이 직설적으로 툭 내뱉는 사람들이 있는데, 본인은 단지 친밀감을 표현하는 장난 섞인 말일 수 있지만, 나에겐 전혀 장난으로 들리지 않을 때가 많았다. 하지만 갈등을 굳이 일으키고 싶지 않아 어색한 웃음으로 넘기기 일쑤였다. 이러니 곁에 여러 명의 사람을 두는 것보다 자연스레 나와 마음이 맞는 편안한 소수의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 같다.


 연락하는 방식에 있어서도 나는 전화보다 문자를 선호하는 편이다. 전화의 경우 생각을 해가며 말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친하지 않을 경우 잘못하면 아무 말 대잔치를 벌일 수 있다. 하지만 문자는 보내기 전까지 언제든 글을 수정할 수 있고 그렇기에 가장 오해의 소지 없이 내 생각을 전달할 수 있다. 심지어 요즘은 카톡을 보내고 나서도 삭제할 수 있는 기능이 추가되어 굉장히 편리해진 것 같다. 추가로, 나는 연인을 제외하고 모든 지인들과의 연락에 별로 연연하지 않는다. 연락이 먼저 오면 반갑게 답장을 하지만, 오랫동안 연락이 되지 않더라도 그저 잘 살고 있겠거니 하고 전혀 섭섭해하지 않는다. 그러니 자연스레 내가 먼저 연락을 하는 일은 드물다. 간혹 이런 성향 때문에 오해를 빚기도 한다. 예전에 MBTI를 주제로 한 모임에 나간 적이 있는데, 같은 INFP 분이 비슷한 상황을 겪으셨다. 자신도 연락 자체에는 별 생각이 없어서 친구에게 선톡을 잘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친구는 왜 항상 내가 먼저 연락을 해야 하냐며 섭섭하다고 했다고 한다. 누가 더 나쁘냐가 아니라, 순전히 성향 차이로 발생한 갈등이었고 그분의 마음이 공감이 됐다. 다행히도 요즘 내 친구들은 그러려니 이해해주고 있다.


 INFP들은 남에겐 정말 관대하고 나에겐 모질게 대하기 때문에 힘들긴 하지만 그만큼 멋진 면모들을 품고 있다. 상대를 편안하게 해주는 따스함과 다정함이 있고, 내가 싫어하는 건 상대에게도 절대 행하지 않는 도덕적 신념이 있다. 또한 자기 객관화를 많이 하는 만큼 내적 성장을 잘하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타인을 가장 의식함에도 돈과 명예만을 좇기보다는 자연을 즐길 줄 알고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일에 몸담기를 원한다(물론 모든 것엔 예외가 있다). 훗날 가장 나답게,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유형이다. 주로 우리는 예술적인 분야에 빛을 발하는데, 나도 직장은 정반대이지만 이렇게 글을 쓰고 작가로서 제2의 삶을 시작하는 것이 나의 큰 이다. INFP는 외면의 분위기는 동글동글하지만 내면은 꽤 단단한, 자신만의 뚜렷한 소신을 가지고 있는 멋지고 낭만적인 사람들이다. 나는 따스하고 평화롭고 작은 것들에도 행복감을 느끼는 모든 INFP들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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