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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빨간 우산 Sep 30. 2023

뉴욕의 추석 쇠기

뉴욕의 길거리가 사뭇 부산스럽다. 이곳저곳에 초막이 들어섰기 때문이다. 올해는, 우리의 추석과 유태인의 초막절이 겹쳐졌다. 유태인 명절이 다가오면, 뉴욕은 소란스럽거나, 또는 아주 조용해진다. 왜냐하면, 유태인 버스가 시끄럽게 확성기로 유태 노래를 틀며 길거리를 누비기 때문이기도 하고, 반면에 유태인들은 출근을 아예 안 하기 때문에 도로마저 한산하다. 유태인 Business Owner가 쉬면서 대부분의 사업장들도 문을 닫기 때문에 그곳에서 근무하는 종업원들도 따라서 쉬기 때문이다. 유태인 선생님이 많은 학교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도대체 유태인이 모두 몇 명이기에 뉴욕 전체가 이리도 유태인 명절에 휘둘리는지 모르겠다. 손님도 뚝 끊이고, 그래서 유태인들이 출근 안 하고 집에만 있는 날에는, 차라리 나도 집에서 안 나오고 싶다.

 

올해도 또 뉴욕서 추석을 맞는다. 한국 뉴스를 보니, 추석에는 온 국민이, 나라 전체가 들뜬 기분이지만, 여긴 아니다. 오직 신문에서나, 그리고 한인 마트에나 가야 조금 느낄 수가 있고, 또는 주일에 교회에서 나누어주는 송편에서나마 '아, 추석이구나'하며 상기해 볼 수 있을 뿐이다. 떡집을 운영하는 내 친구는, 지금 일 년 중 제일 바쁜 시간을 보내느라 정신이 없을 것이다.

 

얼마 전에 오랜 미국 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영구 귀국한 또 다른 친구의 메시지를 보니,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다. 오랜만에 맞이하는 추석의 의미가 남다를 것이고, 또 일가친척들과 떡과 과일을 나눠 먹으며 성묘도 갈 수 있다니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나는 한국에서의 추석에 대한 기억이 그렇게 좋기만 했었던 것은 아닌  듯싶다. 젊었던 시절, 사회에 막 발을 내디뎠던 초년생 시절에는, '갑'이 아니라 '을'의 입장이었으니, 받는 것보담, 갇다 바쳐야 하는, 그러니까, 선물을 누구에게 얼마나 전달하는 문제를 가지고 고민했던 시절이었다. 예를 들면, 상사의 지시로 공무원에게 봉투를(요즘은 깨끗해져서 아니겠지만?) 전달해야 할 때, 언제 어떻게 전해야 하는지가 나에겐 큰 고민거리였었다. 또 내가 사업을 하고 있을 적엔, 어려운 처지에서도, 종업원들에게는  추석 상여금을 마련하느라 동분서주했던 기억도 떠오른다. 그리고 아버님 모시고, 시골에 한번 가노라면, 차가 심하게 막혀서, 무척 고생했던 그런 기억들이 떠 오른다. 


암튼, 그런 추석이 미국에서는, 분위기도 그렇고, 매우 어정쩡한 명절이지만, 반면에 이에 대응할만한 또 다른 명절이 따로 있기는 있다. 추수 감사절인데, 추수 감사절이 돌아오면, 미국 전체가 들썩인다. 반면에 한국에 있었을 적에는 추수 감사절이라고 지낸 것은 교회에서 뿐이었다. 미국의 영향을 받은 개신교에서 추수 감사절의 뜻을 되새기고는 있었지만, 그것은, 미국 문화에서 비롯된 것이었으니, 한국에서의 추수 감사절은 어떤 면에선 어정쩡했던 것도 또한 사실이다.


갑자기 내 셀폰에서 알람이 울렸다. (누가 또 납치가 되었나?) 그게 아니라 홍수주의보가 떴다. 여행을 자제하란다. 그렇지 않아도 폭우가 벌써 두 시간째 쏟아지고 있었다. 뉴욕, 특히 맨해튼에서는 폭우가 쏟아지면, 반드시 문제 되는 것이 따로 있다. 도로 밑에는 고압의 스팀 라인이 깔려있는데, 그 스팀 라인에 찬 물이 들어가면, 스팀이 새거나 심하면 폭발한다. 맨홀채 날아가거나, 심지어는 사람이 다치기까지 한다. 내가 아는 사람도 비 오는 날, 택시를 타고 가다가, 맨홀이 택시 밑에서 폭발하며 다리를 크게 다쳐서 고생하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비가 그렇게 마구 쏟아지더니만, 아닌 게 아니라...


사이렌 소리가 요란하게 울리며, 불 자동차가 먼저 내달리며, 길거리 이곳저곳에서 스팀의 증기가 마치 불난 곳의 연기처럼 마구 피어오른다. 스팀 라인이 여기저기서 또 터진 모양이다. 게다가...

갑자기 내가 있는 빌딩에서도 사이렌 소리가 울렸다. 빌딩 관리 요원들이 이리 뛰고 저리 뛴다. 빌딩의 지하실에 물이 찼단다. 온 세상이 난리다. 나도 이런 날에는 집에 갔으면 좋겠다. 게다가 추석인데... 그런데,


알고 보니, 물난리가 난 곳은 내가 있는 빌딩의 지하실뿐만이 아니었다. 자동차가 주차되어 있는 지하 주차장에도 물이 들어왔다. 다행히 차가 잠길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래서 올해는 이렇게 소란스럽게 추석을 보냈다. 그래도,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오늘은 못 보겠지만, 내일이나 모레쯤 되면, 한국에 떴던 그 보름달이 여기서도 똑 같이 큰 달로 뜰 것이다. 약간은 찌그러져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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