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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룸 Mar 01. 2021

15_포옹의 힘

어른이태권도


 




설 연휴를 앞두고 인사 차, 한달 여 만에 다시 도장에 나갔다. 

전 날 병원에 들러 안정기가 되었으니 이제 보호대를 풀어도 된다는 의사선생님의 소견을 받기는 했지만, 아직 조심스러운 마음에 보호대를 그대로 차고 목발도 짚고 갔다. 맨 처음 통학차량 동승보호자로 일 한지 2주 만에 코로나 때문에 한 달 휴관 했었고, 새해에 다시 개관한 지 4일 만에 발을 다치는 바람에 나는 또 한 달을 쉬고 가는 거였다. 아이들이 나를 기억이나 할까, 보고 싶어했을까 내심 기대도 해봤다가 또 어색해질까 걱정이 되었다.


도장에 들어서니 고맙게도 꽤 많은 아이들이 나를 알아봐주었다.

"와! 선생님, 로봇 발이네요! 근데 로봇이 되다 말았다! 발만 로봇이네~"

"선생님, 다리 아파요?"

"선생님, 깁스 하셨네요."

이제 겨우 7살 쯤 되어보이는 한 아이가 너무나 정확한 발음으로 말했다.

"어, 너 깁스를 어떻게 아니? 너도 깁스 한 적 있구나?!"

"네, 여섯 살 때 팔에 이렇게 깁스 했었어요."

아이구.. 이 어린 것이 더 어릴 적에 깁스를 했었다니, 보호대 차고 목발 짚은 내 처지에 이 아이가 더 안쓰러워졌다.

"괜찮아~ 이제 네 팔은 더 튼튼해 졌을거야. 선생님 발도 더 튼튼해 질꺼야."

사무실 쪽으로 발길을 돌리자, 나를 지긋이 쳐다보던 한 아이가 사무실 문을 살며시 열어주었다.


"관장님, 안녕하세요!"

"어이구, 쌤! 발은 이제 좀 괜찮아요?!"

"네, 이제 안정기 되어서 이거 풀어도 된데요. 연휴동안에는 집에서 보호대 풀고 살살 걸어보려구요."


도장에는 그새 새로운 아이들이 퍽 늘어나있었고, 설연휴와 졸업 입학 시즌을 앞두고 이것저것 할 일이 굉장히 많았다. 


"쌤, 연휴 지나면 유치부 아이들 졸업입학 선물 준비해야 하고 신학기 홍보 소책자도 만들어야 해요. 근데 다음 주 부터 바로 차 탈 수 있겠어요?"

"네, 괜찮아요. 다음 주 부터는 제가 버스 탈게요. 그리고 어차피 연휴동안 어디 가지도 못하니 집에서 소책자 디자인 좀 해 둘게요."

"고마워요. 그럼 연휴 잘 보내시고, 월요일에 뵈요."


인사하고 사무실을 나오는데, 조금 전에 문을 열어줬던 아이가 내 쪽으로 다가오는가 싶더니 나를 가만히 꼬옥 안아주었다. 전혀 예상치 못 했던 아이의 포옹에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울컥했다. 그동안 아팠던 것에 대한 위로와 앞으로에 대한 격려와 반가움과... 아니, 사실 그 순간의 감정을 어떤 단어들로 설명해야 하는지 조차 모르겠다. 나는 그저 이 아이로부터 굉장히 따뜻하고 위대한 기운을 받은 느낌이었다.

 




집에 돌아오니 엄마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물어보셨다.

"어떻드노? 관장은 뭐래? 애들이 알아보더나?"

"엄마. 오늘 애들이랑 이런 일이 있었다." 

질문 폭격기 모드의 엄마를 꼬옥 안으며 낮에 있었던 일을 얘기했다. 다 큰 딸년 병수발 하느라 고생한 울 엄마 눈도 어느새 발개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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