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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룸 Feb 10. 2021

번외_꿈만 같은

어른이 태권도

차라리 꿈이었으면 싶었다. 눈 떠 보니 오른쪽 다리에는 발부터 종아리까지 감싸는 단단한 보호대가 채워져 있고, 그 위에는 설탕포대가 아닌 얼음찜질팩이 얹혀있었다.


침대에서 눈 뜨고 일어나 발을 내딛고, 생체신호가 왔을 때 고민없이 바로 화장실에 가고, 씻고 싶을 때 얼마든지 샤워하고, 뜨거운 커피 한 잔 가득 담아 들고 다니면서 마시고, 집 앞 마트에 장 보러 가는, 이 모든 ’소소하고 확실히 당연한’ 것들이 하루아침에 꿈인듯 아련해졌다.


고작 두 세개 뿐인 낮은 계단도 난간이 없으면 올라가기 버겁고, 미끄럼방지 장치가 없는 경사로는 내려가기 겁나고, 걸어서 10여분 거리인 병원도 차를 타지않으면 갈 수 없고, 병원의 묵직한 여닫이문은 누군가 열어주지 않으면 지나갈 수 없고, 집 앞에 새로 오픈한 대형마트에도 구경 갈 엄두가 안났다. 혼자서 할 수 있던 거의 모든 것들이 도움 없이는 불가능 한 이 상황에 그저 헛웃음만 나왔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이미 나에게 벌어진 현실인 것을. 내가 잠시 이렇게 되어야만 했던, 인간으로서는   없는 이유가 있겠지. 이만하면 액땜 치고 작지않게 치른  같으니  한해 대운을 슬쩍 기대해 보련다. 어느  수술  4 차에 접어든 지금은 많이 회복되어, 드디어 묵직한 보호대를 벗고  발로 땅을 디디며 살살살 재활운동을 해야  시기가 왔다. 나를 위한 셀프선물로 태권도 1단을 따고 싶었는데, 걸음마를 떼게 될 줄이야.




#체헐리즘 단상. 목발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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