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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룸 Dec 17. 2020

06 아이들의 버스

어른이태권도




태권도장에는 현재 두 대의 통학차량이 운행 중이다. 원래는 한 두대 더 있었지만, 코로나 여파로 운행을 중단하게 되었다고. 30인승 미니버스인 1호차는 차량 실장님께서, 승합차인 2호차는 관장님과 사범님께서 번갈아가며 운전하시는 듯 보였다. 두 대는 각자 정해진 노선대로 움직이지만, 아이들의 스케줄에 따라 서로 위치를 파악해 가며 유동적으로 운행하기도 한다.


나는 오후 두시 반에 도장에서 출발하는, 그러니까 하원하는 버스로 나가서 아이들을 내려주고 세시 반 수련에 등원하는 아이들을 태워서 다시 들어간다. 1회전 운행에 딱 한 시간 정도 걸리니 이런 식으로 아이들 내려주고 태우기를 네 번 반복하면 시간은 어느 새 저녁이 되어있다. 아이들 등원시간은 보통, 늘 같은 시간이어서 일주일 하고나니 각 시간대 별 아이들과의 일상이 생겼다.


첫 번째 차량 (pm 02:30 - 03:30)

몇 안되는 하원생들이 초반에 다 내리기 때문에 첫 번째 등원생을 태우기까지 시간이 좀 남는 편이다. 기다리는 동안 여기저기 엉망으로 꼬여있는 안전벨트를 풀어서 정리해 둔다. 이 시간에 등원하는 아이들은 유치원생 세 명과 초딩 저학년 여섯 명 정도 되는데, 유치원생 쌍둥이 형제가 타면 항상 더하기 문제를 내 달라며 귀엽게 조른다. '50 더하기 50' 은 맞히는데, '50 더하기 60'에서 헤매는 수준이므로 10단위, 100단위로만 내준다.. 뒷쪽에 앉아있는 초딩 형아들이 재미없어 하길래 끝말잇기도 해 보고, 나라이름 대기도 해 봤다. 그 뒤로 이 시간 아이들과는 수학이든 국어든 지리든 늘 문제를 푼다. 이 아이들과의 등원버스는 '도전 골든벨' 버스다.


◆◆

두 번째 차량 (pm 03:30 - 04:30)

이 시간의 하원생들도 많지 않은 편이다. 초딩 저학년 몇 명과 6학년 한 명. 6학년짜리 소년은 사춘기가 오려는 참인지, 처음에는 버스를 타면 내릴 때까지 핸드폰만 보고 있었다. 나도 굳이 먼저 말을 걸지는 않았었는데, 한 번은 그의 동생이 '우리 형은 집에서도 맨날 핸드폰만 잡고 있다. 친구도 없으면서' 라고 나에게 말을 걸자 형제끼리의 티키타카가 시작되었다. '왜~ 같이 폰게임 하는 친구들이 있을 수도 있지~' 하고 소년편을 슬쩍 들어주었다. 그 이후 부터였나, 소년은 폰을 내려놓더니 이런저런 대화를 하면서 가기 시작했다.


  "고기는 역시 소고기가 더 맛있죠. 빕스에 티본 스테이크가 엄청 크다던데, 비싸겠죠?"

  "학원에서 이제 중1 수학을 배우기 시작했는데, 다른 아이들은 벌써 다 했데요. 저는 늦은 걸까요..."


이 친구와 조금 가까워진 것 같아서 고맙기도, 뿌듯하기도 하다. 마지막 하원생이 내리고 나면 일단 심호흡을 한번 해 줘야 한다. 이제 곧 피크타임이기 때문이다. 초딩 등원생을 몇 명 태우고, 어린이집 세 군데를 들르면 버스는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된다. 목도리로 줄다리기를 하는 녀석들, 어린이집에서 만든 공작품으로 이리저리 장난치는 녀석들, 저희들끼리 재잘재잘 수다떠느라 정신없는 녀석들... 그 와중에 나는 2호차 사범님과 연락하여 서로 위치를 확인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픽업해야 하는 아이들이 있는데, 둘 중 먼저 갈 수 있는 차량으로 픽업하기 때문이다. 2호차가 픽업하기로 하면, 우리 차는 도장으로 바로 들어간다. 어린 유치부 꼬마들이 대부분이라 버스에서 내린 후 계단을 올라가 도장에 들어갈 때까지, 끝까지 긴장을 늦출 수가 없다. 


◆◆◆

세 번째 차량 (pm 04:30 - 05:30)

첫 번째 차량 등원생들이 하원하는 버스다. 이 때는 히터를 잠시 끄고 창문을 열고 운행을 해야 한다. 히터가 많이 달궈진 대다가, 방금 전까지 유치부 아이들이 한바탕 머물다 갔기 때문에 환기를 시키지 않으면 다음 아이들이 멀미를 하기 때문이다. 운동을 하고 온 아이들이라 그런지, 창문을 열어주면 춥지도 않고 오히려 더 신이 나는가 보다. 어떤 녀석은 달리는 창 밖으로 익룡소리를 내기도 한다... 이 아이들이 다 내리면 다음 등원생이 타기 전에 창문을 닫는다. 이 시간의 등원생은 거의 없다. 적으면 두 세명, 많으면 서 너명. 잠시 숨을 돌릴 수 있는 시간이다. 


◆◆◆◆

네 번째 차량 (pm 05:30 - 06:30)

마지막 차량의 하원생들은 시끌벅적했던 두 번째 차량의 유치부 아이들이다. 다행인 것은, 이 시간의 하원생들 중 초딩 자매가 군기반장이 되어 나를 도와주고, 무엇보다 운동하며 에너지를 쏟아 낸 아이들이 대부분 기절해 버린다는 것이다. 꿀잠 재워버리고 싶은 자녀를 둔 내 또래의 부모들에게 진심으로 태권도를 추천 해 드린다. 다행중 불행인 것은 내릴 때가 되어도 잠에서 깨지 못하는 아이들을 내가 안아서 내려준다는 것... 그래도 내가 안아올릴 수 있는 무게의 꼬마들인 게 불행중 다행이라면 다행.

이 시간의 등원생들은 초딩 고학년인 시범단 수련생들이다. 저희들 끼리 알아서 자리잡고 적당히 수다떨며 잘 간다. 다만, '미필적고의'로 깜빡하는 이 녀석들에게 안전벨트 알림만 해 주면 통학버스 지도의 일과는 거의 마무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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