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행복해서 깊게 파고들지 않던 하루들
내가 스쳤던 여러 소설 속에
자주 등장하는 단어가 있다.
'안온하다'
대화에서 쓰이는 말은 아니기에 생경했음에도
곧장 그단어가 내가 찾아 헤매던 단어였던 것처럼
자연스레 마음속에 자리 잡았다.
1. 안락하고 평온하다.
2. 조용하고 편안하다.
3. 날씨가 바람이 없고 따뜻하다.
'안온하다'를 접한 한 혹자는 그 말만 보고 당장 소설이 읽고 싶어졌다고 한다. 나의 생을 요약했을 때 안온했다라고 말할 수 있으면, 그래서 누군가 읽고 싶어 질 만한 삶이 라면 참 좋겠다 생각했다.
언젠가 이 단어를 의심 없이 쓸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라며, 그가 나온 문장들을 찾아보고 익혀왔다.
- 밤의 어둠이 우리를 안온하게 감싸 주었다.≪황석영, 어둠의 자식들≫
- 뜨거운 탕 물에 몸을 잠갔을 때의 그 안온한 기분이 되었다.≪이동하, 우울한 귀향≫
놀랍게도 최근 나의 일상을 표현할 수 있는 단어를 고민하다가 마침내 '안온함'에 다다른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남자친구에게 '요즘에 내가 행복해서 글이 안 써져'라는 약간의 재수 없는 고민을 털어놓았는데 그러면 행복해져서 글이 써지지 않는다를 소재로 한번 써보라는 탁월한 조언을 들었다.
왜 행복하면 (나는) 글이 잘 안 써질까.
많은 일들의 바탕이 되었던 나의 동력은 애처롭게도 현재에 대한 불만에서 비롯되어 왔다. 여러 가지 불만들을 해소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방식으로 나는 종종 글쓰기를 이용했다.
근데 행복은 생각보다 너무나 단순해서 긴 호흡으로 그걸 설명하는 것이 장황하고 무용하게 느껴진다.
요즘엔 이유 없는 행복이 많아서, 또 이유를 찾지 않아도 계속 곁에 있을 행복들을 마주해서
행복의 이유를 탐구하거나 글을 통해 고정시키려 하지 않았다. 행복을 글로 표현하는 일이 익숙치 못한 내가 급작스레 만드는 변명인 것 같기도 하지만..
크게 아프거나 힘들거나 하지 않고,
매일매일 작은 웃음이 책갈피처럼 껴있는 지금.
행복한 순간들을 나열하거나 그때의 감정을 설명하는 것 없이, 그저 내가 흠모하던 단어를 쓸 수 있는 일상을 살고 있다고, 나에게 안온한 일상이 왔더라고, 최선의 방식으로 행복에 대한 기록을 남겨본다.
계속해서 머물지 않아도 좋으니
앞으로도 다양한 이유로 나의 일상에,
내가 축복하는 사람들의 일상에 안온함이 깃들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