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오늘 회사에서 뭐 했어?"
28개월 딸에게 들은 첫 위로, 그리고 다짐
첫째는 딸이다.
생후 17개월 무렵 남동생이 태어나서 두 돌도 안된 아기인데 '누나'라는 수식어가 생겼다.
두 돌도 안된 때에 종종 양보를 강요 받는 첫째의 인생이 시작된 것이다.
그래서 나는 첫째 꿀복(태명)이에게 마음이 더 쓰인다.
이게 무슨 평행이론인지, 나도 장녀에 17개월 터울이 나는 남동생이 있다. 연년생 남매의 첫째의 마음을 잘 아는 나로서는, 내가 과거에 싫어했던 엄마의 행동을 최대한 피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꿀복이가 28개월 쯤 되었을 때인가.
이제 막 짧은 문장을 말하기 시작할 때였다. 나는 그때 꿀복이를 재우면서 "오늘 어린이집에서 뭐했어?" "오늘 어린이집에서 뭘 한 것이 가장 재미있었어?"라면서 이것저것 말을 걸었다.
꿀복이가 내 질문에 골똘히 생각하면서 짧은 문장으로 "공을 뻥 찼어" "색칠 했어" "콩콩 뛰었어"라면서 답을 해주었는데, 나는 그 시간이 너무 좋았다.
꿀복이가 재잘재잘 오늘 하루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설명하고 나면 내가 꿀복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잘했네, 재미있었겠다"라고 해줬다.
그러던 어느 날, 사소한 갈등으로 남편에게 서운함을 느꼈던 날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무슨 일이었는지 기억도 안날 정도로 소소한 것인데, 그때는 "괜히 결혼했다"라면서 서운함에 눈물이 울컥 나올 것 같은 감정이 들었던 것 같다.
일도 심리적인 압박이 있었던 때고, 퇴근 후의 육아도 지쳤던 나는 눈물이 나오려는 것을 들키기 싫어서 얼른 작은 방에 가서 돌아누웠다.
그때 꿀복이가 엄마의 무언가 '다름'을 느꼈던 것인지 종종 걸음으로 나를 찾아왔다.
눈물이 살짝 고인 내 눈을 본 꿀복이는 잠시 나를 잠자코 보더니
"엄마 오늘 회사에서 뭐했어?"라면서 내 머리를 그 작은 손으로 쓰다듬어줬다.
나는 그때 마치 애니메이션 속 주인공처럼 콧구멍을 벌렁거리고 턱을 덜덜 떨면서 울음을 터뜨렸다. 수많은 날들 내가 너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겨주던게 너에게는 사랑이었구나.
나는 그때 처음으로 알았다. 이 작은 존재가 나를 이렇게 완벽하게 위로할 수 있다니. 항상 내가 케어해줘야 한다고 생각했던, 겨우 28개월짜리가 나도 함께 케어해왔구나.
나는 이날 정말 처음으로 "아 나 꿀복이를 위해서 내 목숨이라도 바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내 아이를 너무너무 사랑하지만 내 목숨과 바꿀 수 있겠다는 강한 확신? 솔직히 이전까지는 해본 적이 없었다. 이날은 내 안에서 내 자식에 대한 마음이 한 단계 레벨업 한 순간으로 정의하고 싶다. 생각해보면 많은 부모들이 나와 같지 않을까..? 임신, 출산과 동시에 자식에 대한 사랑과 애정의 정도가 갑자기 만렙이 될 수는 없는거니까.
아무튼 28개월 딸의 작은 손과 한 마디가 나를 말끔히 치유했던 첫 순간이자, 내 마음이 레벨업 한 순간이기에 소중하게 기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