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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꿀복 Feb 15. 2024

"엄마 괜찮아 괜찮아"

딸이 처음으로 내 볼을 감쌌을 때

내 자식의 행동으로 내가 펑펑 운 날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엄마라는 이름이 아직 어색하고 서툰 어느 날의 피소드다.


2022년 5월, 딸 꿀복이가 26개월 정도 됐을 무렵 코로나19에 확진됐다. 아이를 돌봐주던 친정 엄마에게서 옮은 모양이었다. 이때 꿀복이는 2형식의 문장을 조금씩 말하던 때였고, 나나 할머니가 하는 말을 서툴고 귀엽게 따라하며 옹알옹알대던 시절이었다.


엄마는 이미 친정에서 격리 중이었기 때문에 꿀복이 격리 기간 동안 내가 집에서 함께 있기로 했다. 남편과 둘째는 시댁으로 '피난'을 갔다.


그렇게 꿀복이와 나와의 단 둘만의 일주일 '집콕'이 시작됐다. 친정 엄마는 나에게 꿀복이를 돌보는 동안 늘 마스크를 쓰라고 했지만 집 안에서 마스크를 쓰고 일주일을 아이와 시간을 보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생각하고 처음부터 마스크를 벗어버리고 생활했다.


격리 초반에는 꿀복이가 엄마와의 단 둘만 있는 시간이 좋은지 내내 애교를 부렸다. 17개월 차이 나는 연년생 동생에게 엄마의 관심을 나눠야 했던 꿀복이의 행복해하는 미소가 귀여우면서도 짠했던 순간들이었다.


꿀복이가 확진 초반 며칠 열은 났지만 컨디션이 좋아 다행이었다. 우리는 침대에 누워 이것저것 이야기하며 놀기도 하고 책도 읽었다. 이따금씩 꿀복이가 내 얼굴이 침을 튀어가며 기침을 했을때 흠칫 하긴 했지만 '어차피 피하지 못할 코로나19인데 이왕이면 딸한테 옮지 뭐' 이런 마음이 있었던 것 같기도.


격리 3일째 새벽, 이가 부딪힐 정도로 오들오들 떨면서 눈을 떴다.

"아 왔구나"

열을 재보니 38.8도였고 오전 병원을 가보니 여지 없이 확진이었다. 그렇게 나도 꿀복이와 함께 확진자로서 격리를 이어갔다.


꿀복이는 확진 3일째 컨디션을 많이 회복했고 나는 점점 기력달려 널브러졌다. 그 와중에 꿀복이 삼시세끼는 거를 수 없기 때문에 억지로 몸을 일으켜 밥을 해주고 먹여주고 씻겨주고 놀아줬다. 하루 종일 아이와 집에만 있다보니 시간은 왜이렇게 안가는지 꿀복이랑 클레이를 하고 주방 놀이를 하고 블럭을 쌓고 인형 놀이를 하고 병원 놀이를 하고 책을 읽어도 여전히 해가 중천이었다.


꿀복이 확진 4일, 나의 확진 2일째 아침이었다. 꿀복이는 이제 열도 나지 않았고 잔기침만 조금 할 뿐이었다. 그러나 내 컨디션은 완전히 바닥을 쳤다. 꿀복이 밥 차리고 먹여주고 나면 내 밥 차릴 기운은 없어서 거르거나 너무 배가 고플땐 빵이나 과자를 대충 입에 넣고 약을 먹었다.


꿀복이 밥 시간은 왜 이렇게 빨리 오는지, '이번엔 뭘 해주지' 하다가 도저히 기운이 없어서 누룽지를 끓여주기로 했다. 누룽지가 눌러 붙지 않게 한번 젓고 주저 앉고 한번 젓고 주저 앉으며 들어 꿀복이 밥상에 놔줬다. 아직 혼자 먹기는 서툰 아이라서 한 술 떠서 먹여주려는데 자꾸 손사래를 치면서 먹지 않겠다고 하는데 그 순간 어찌나 화가 나는지... 내 몸은 힘들고 그 와중에 내 밥 보다 딸 밥 챙기겠다고 누룽지 끓여 놔줬더니 안먹겠다고?


순간 욱해서 "왜 안먹어! 먹어야 낫지!" 하고 입 가까이 대줬더니 마지 못해 입에 넣는 꿀복이.


그리고 사단이 났다.


정신이 없어 누룽지를 식히지 않고 끓인 직후 바로 먹으라고 했던 거다. 누룽지에서 김이 펄펄 나는데 그때 내 눈에는 왜 안보였는지. 그리고 꿀복이는 그 김을 보고 나중에 먹겠다며 손사래를 친 것일텐데,

엄마의 성화에 나를 믿고 입에 그 뜨거운 누룽지를 입에 넣었던 꿀복이는 화들짝 놀라 외마디 비명을 지르고는 울었다. 그제서야 이 누룽지가 엄청 뜨거웠다는 사실을 인지한 나는 그 1~2초 사이에 나에 대한 환멸이 밀려왔고 미안함과 죄책감의 소용돌이에 완전히 매몰됐다.


일단 꿀복이 입을 얼른 찬물로 헹궈주며 연신 "미안해 미안해 엄마가 미안해"하면서 사과하는데 그때 이미 나는 나에 대한 자책과 꿀복이를 다치게 했다는 미안함에 입술을 파르르 떨며 울며 이야기 하고 있었다.


아마 그때 꿀복이는 내가 엉엉 우는걸 처음 본 것 같다. 자기 입 천장이 다 데었는데도 약간 놀란 기색과 당황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갠탸나 갠탸나 엄마 갠탸나 나 바바 뚝"


꿀복이는 그 작은 두 손으로 내 볼을 감싸 쥐고는, 있는 힘껏 나를 위로했다. 다 데어버린 자기 입 천장보다 놀라 울고 있는 내가 더 우선순위였던 내 아이의 그 결연하고 단단한 표정이 잊혀지지 않는다.


나는 더 펑펑 눈물을 쏟고 꺼이꺼이 소리를 내며 꿀복이를 품에 꼭 안았다. 그리고 꿀복이는 말 없이 내 어깨를 토닥토닥 두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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