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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샘 Jan 08. 2020

포도가 재배된다

포도는 이런 곳에서

포도는 이런 곳에서와 이런 곳에서도 재배된다     


#1. 이런 곳에서 : 포도밭은 극지방과 적도지방을 제외한 전 세계에 걸쳐 분포하며, 그중에서도 남ㆍ북위 30°와 50° 사이의 지역에 집중되어 있다(지도 참조). 이글거릴 정도의 무더위(열대)나 얼어붙을 정도의 추위(한대)만 아니면 어디에 심어도 다 잘 자라기 때문이다. 포도가 천천히 익을 수 있게 도와주는 길고 건조한 여름이 있고, 포도나무에 필수적인 휴식을 주는 길고 추운 겨울이 뒤를 잇는 계절의 변화가 뚜렷하게 나타나는 곳이면 더 좋다.     

세계 포도 재배 지역(출처: Tim Unwin, 1996)

보통 포도의 품질은 포도재배 지역의 기후ㆍ지형ㆍ토양 조건과 포도 품종, 포도재배 기술에 의해 결정된다. 포도재배에 영향을 미치는 자연조건은 실로 다양하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포도재배는 재배 지역의 기온과 강수는 물론, 포도밭의 햇빛 받는 시간과 각도, 포도밭 경사면의 위치와 기울기, 토양의 종류와 특성, 물 공급과 배수 조건, 지열, 강이나 호수에 반사되는 빛 등 다양한 자연조건의 영향을 받는다. 이와 같은 포도밭의 자연조건을 한마디로 떼루아(terroir)라고 한다. 이 말은 포도와 포도주의 대표적인 나라 프랑스에서 만들어진 용어다.    


떼루아는 주어진 자연조건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포도 재배에 이상적인 떼루아는 그냥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재배 농가들은 주어진 자연환경이 포도재배에 불리한 경우, 이것을 보완하여 포도재배에 적합한 떼루아로 변경시킨다. 예를 들면 구릉의 꼭대기에 숲을 만들어 구릉 너머에서 포도밭으로 불어오는 추운 바람을 막아 포도 재배지로 만드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마치 풍수지리에서 풍수적으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여 땅을 이용했던 비보 풍수(裨補風水)의 원리와 유사하다. 또한 지역에 따라 떼루아는 다양하여 무엇보다도 그 떼루아에 맞는 포도 품종을 선택하는 것도 포도재배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뿐만 아니라 포도밭의 위치와 지형, 기후 등이 지역에 따라 다양하기 때문에 포도재배에 있어 상대적으로 중요하게 작용하는 떼루아 요소가 다르게 나타난다. 예를 들어 독일의 라인강과 모젤 강변의 포도밭은 강수량이 적고 경사져 있어 토양 배수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되지만, 고위도에 위치하고 있어 일조량을 충분히 확보해야 하는 문제가 가장 큰 걸림돌이 된다. 반면 프랑스 보르도의 포도밭은 일 년에 태양의 일조시간이 2,000시간이나 되고 평균 기온도 12~13℃나 되어 이상적인 기후 조건을 갖추고 있으나 경사가 완만한 구릉지에 분포하고 있어 토양의 배수에 특별한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는 떼루아다.

    

#2. 이런 곳에서도 : 주어진 재배조건이 극히 불리한데도 포도를 재배하고 있는 유럽의 두 섬을 소개하고자 한다. 스페인의 란사로테 섬과 그리스의 산토리니 섬이다. 두 섬은 여행지나 포도주로 잘 알려져 있는 섬이다. 포도주로 유명해진 것은 포도 재배에 적합한 루아를 만드는 데 성공했기에 가능했다. 그래서 이런 곳에서도 오래전부터 포도가 재배되고 있는 것이다.

란사로테 섬의 포도밭 전경(es.wikipedia.org)

먼저, 스페인의 란사로테 섬은 아프리카 해안에서 대서양 쪽으로 떨어져 있는 카나리아 제도(諸島)의 한 섬이다. 화산 분출에 의해 만들어진 섬의 토양은 화산재이다. 그런데 화산재는 수분 보유 능력이 떨어져 대부분의 작물들은 란사로테 섬에서 자랄 수 없었다.     


그렇지만 포도는 토양이 수분을 보유할 수 있는 곳까지 깊이 뿌리를 내릴 수 있어 생존할 수 있었다. 이에 덧붙여 기업가 정신으로 무장한 포도 농가들은 수분 증발을 가속화시키는 바람을 막기 위해 작은 돌담을 쌓았다. 돌담으로 둘러친 구덩이들은 수분 증발을 막아 매우 적은 양이지만 강수를 모으는 데 도움이 되었기에 포도 재배가 가능했던 것이다.     


그 결과, 화산암으로 된 낮은 반원형 돌담과 구덩이와 그 안에 땅 위로 뻗는 포도나무가 결합된 독특한 경관이 형성되었다. 이곳에서 생산된 포도주가 란사로테 원산지로 인정받으려면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물외에 별도로 물을 주면 안 된다고 한다. 그렇지 않으면 란사로테 포도주라는 이름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산토리니 섬(좌: 위성사진, 우: 1848년 지도)

다음은 그리스의 산토리니 섬으로 에게해 남부에 위치한 칼데라 화산섬이다. 이 섬의 포도나무 생김새는 다른 지방의 포도나무와 다르다. 예수의 가시 면류관처럼 생긴 포도나무가 동그란 바구니 모양을 하고 땅에 바짝 붙어 있다. 산토리니에선 이런 포도 재배 방식을 '쿨루라(kouloura, 그리스어로 바구니란 뜻)'라고 한다. 쿨루라는 바람과 햇빛이 가혹하리만큼 강렬한 산토리니에서 포도를 보호하기 위해 수천 년 전부터 행해지는 재배 방식이다.

전통 포도재배 방식: 쿨루라

이를테면 나무줄기가 자랄 때 가지치기를 하면서 둥글게 똬리를 틀어주는 방식인 것이다. 그러면 무성하게 자란 포도 잎들이 똬리 안쪽으로 열린 열매를 뜨거운 햇빛과 거센 바람으로부터 지켜주고, 똬리는 바다에서 밀려온 안개를 가둬 내부 습도를 유지해주는 효과를 볼 수 있다.     


참고자료     

김상빈(역), 와인의 지리학, 푸른길, 2018

정수경(역), 오즈 클라크의 포도주 이야기-현대적인 감각의 포도주 가이드, 푸른길, 2001

그랑 라루스 와인 백과

오마이뉴스(16.12.08)

Tim Unwin, Wine and the Vine: An Historical Geography of Viticulture and the Wine Trade,  Routledge, 1996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4/15/201604150102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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