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결혼기념일 즈음하여 세 식구가 중국 청도로 여행을 갔다. 맥주를 좋아하는 나는 칭다오 맥주 공장을 직접 가서 볼 수 있다는 점이 가장 기대되었다.
둘째 날 맥주 공장에 가기 전에 점심 메뉴로 북경오리를 먹기로 했다. 체인점인 북경오리 전문점에 가서 주문을 하려는데 신랑은 오리 한 마리를 시키자고 한다.
나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되물었다.
-한 마리나?
-셋이 먹는데 한 마리는 먹어야지.
내가 먹을 거에 야박하게 굴거나 아끼는 사람이 절대 아닌데 그날은 오리 한 마리를 시키자는 신랑을 말렸다. 얼핏 본 북경오리는 크고 튼실해 보여서 셋이, 아니 둘이 한 마리 먹기엔 너무 많을 것만 같았다. 오리는 닭보다 훨씬 크니 우린 반 마리면 충분하다는 확신이 섰다. 다른 메뉴도 시켜야 하니 무리하지 말자고. 분명히 남을 거 같고 다음 일정이 있으니 들고 다닐 수도 없고 아깝고 등등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얘기하며 내 의견을 세게 밀고 나갔다. 평소의 나라면 기꺼이 신랑이 하자는 대로 했을 텐데 그날은 이상하게도 고집을 부렸고 신랑은 양보해 주었다.
우리는 결국 오리 반 마리를 주문했다. 같이 곁들여 먹을 볶음밥과 공심채 볶음에 시원한 맥주와 주스도 주문했다. 가뿐한 마음으로 다른 테이블을 둘러보는데 직원이 카트를 밀고 와서 테이블 옆에서 구운 오리를 해체해 주고 있다.
-저거 봐. 오리 엄청 크지? 한 마리 시켰으면 남길 뻔했다니까.
우리 식탁에도 음식과 맥주가 서빙이 되었고 곧 오리도 도착했다. 직원은 자연스럽고 익숙한 손길로 오리의 껍질부터 스윽스윽 잘라 접시에 놓아주며 앞에 있는 설탕에 찍어 먹으라고 했다. 기름기가 많은 부위를 설탕에?
-아, 이것만 먹어도 느끼할 거 같아 그치?
약간의 거부감을 가지고 오리 껍질 한 점을 설탕에 콕 찍어 입에 넣었다. 설탕이 녹으며 오리 껍질의 기름과 만나 혀에 닿은 그 순간......
아차, 싶었다.
너무 맛있다.
얼마 되지 않는 오리 껍질은 한 점씩 먹어 없어질 때마다 너무나 아쉬운 별미였다. 우리의 소중한 북경 오리 반 마리는 순식간에 해체가 되었다.
내가 간과한 사실은 조류의 몸통은 비어있다는 것이었다.
오리 반 마리는 생각보다 살집이 많지 않았다. 손질해 준 고기를 밀전병에 싸서 오이도 넣고 파도 넣고 춘장 같은 소스에 찍어먹으니 담백하고 신선하며 맛있었다. 중국에서 먹은 음식 중 가장 맛있는 오리를 반 마리만 시키다니 내가 큰 실수를 했다. 급히 반 마리를 추가로 시키려고 하니 브레이크 타임이라 이제 주문이 안 된단다.
-왜 나 안 말렸어~ 내가 아주 큰 실수를 했네.
뭔가에 단단히 씌었었나 보다. 우리에게 치킨 한 마리도 부족한데 난 왜 오리를 반 마리만 시켰을까.
더 먹지 못해 아쉬운 마음으로 식당을 나서며 작은 생각 하나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기회가 왔을 때 누리자.
그냥 흘려보내지 말고 누려.
아끼거나 겁내지 말고.
그래. 맞아. 언제 또 중국엘 와서 북경오리를 먹어보겠어.
기회가 왔을 때 누리고 즐겨야지. 타이밍을 놓치면 말짱 꽝이다.
더운 여름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누리고,
추운 겨울 따뜻한 라테 한 잔 누리고,
타이밍 놓치지 말고 누리기.
내게 찾아온 순간을 놓치지 않고 잘 누리자.
중국에서 북경 오리를 먹으며 인생의 작은 교훈 하나를 배웠다.
꽥꽥!
땡큐
2022년 8월 현재,
-이 순간을 누리자-라는 파이팅은 머릿속에 있으나 작은 불안과 걱정들이 늘 함께 따라다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