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 사랑

2022년에 꺼내 먹는 2021년의 글 <읽는 먹방>

by 덩이

술을 늦게 시작했다. 스물이 훌쩍 넘어서부터 마시기 시작했다.

과일 맥주 후치가 첫 맥주였다. 회사 언니가 편의점에서 후치를 한 병 사주어 계단에 함께 걸터앉아 먹었다. 달콤하고 맛있었다. 지금은 달콤한 맥주를 즐기지 않지만 초기엔 달달한 맥주를 위주로 먹었다. 호가든처럼 향이 있는 밀 맥주를 즐기던 시기를 지나고 나니 청량한 라거를 가장 좋아하게 되었다.

소주나 양주, 와인은 별로 입에 맞지 않는다. 시원하고 구수한 맥주가 내 인생 최고의 알코올이다.

두 번째는 막걸리.

하...... 그러니 뱃살이 나날이 불지.

열심히 하루를 보내고 나서 저녁의 식탁에서 만나는 시원한 맥주 한 잔은 ‘오늘 고생했어, 즐겨’ 내 등을 두드려준다. 첫 잔은 늘 달다. 첫 잔으로 온전한 맥주 맛을 느낀 뒤 두 번째 잔부터는 안주를 먹기 위한 음료가 된다. 맥주 안주는 짭짤할수록 좋다. 저녁 먹고 가볍게 한 잔 할 땐 오징어나 육포나 쥐포 같은 마른안주나 견과류가 적당하다. 가끔은 밥을 먹고도 배부른 안주가 당길 때가 있다. 치킨은 좀 과하고 새우깡은 살짝 아쉽다 싶을 땐 생라면을 뽀개서 수프를 찍어먹으면 별미다. 입안에 남은 수프의 짠기를 맥주 한 모금으로 내려보낼 때는 호프집의 그 어떤 베스트 안주 부럽지 않다. 오독오독 생라면 씹는 즐거움도 함께 즐길 수 있다.

낮에는 덥고 아침저녁으로는 선선한 무렵, 야외 테이블의 분위기를 참 좋아한다. 편의점 테이블도 가성비 좋다. 밖에서 마시면 바람이 알코올로 발그레해진 볼을 식혀준다.

휴가를 낸 날, 낮 맥주는 참 달다.

‘너희들은 일하니, 나는 맥주 마신다’ 하며 휴식의 즐거움을 맥주와 함께 즐길 때 기분이 참 흐뭇해진다.

닭발집에서 한 번, 호프집에서 한 번, 양꼬치 집에서 한 번 혼자 맥주를 마셔본 적이 있다. 세 번에 걸쳐 가게 혼맥을 즐겨본 결과 역시 여럿이 같이 마셔야 즐겁다는 걸 알게 되었다. 웃고 떠들면서 천천히 마시면 아침부터 시작해서 저녁까지 많은 것들을 마시고도 쉽게 취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도 경험했다.

섞어먹는 것엔 약하다. 멋모르고 마시던 시절 맥주와 소주를 섞어 신나게 마셨다가 지옥을 맛 본 뒤로는 섣불리 섞지 않는다.

늦게 들어선 음주의 세계에서 세월 가는 줄 모르고 즐겁게 마시고 먹었다. 지금은 예전처럼 오랫동안, 늦게까지 마시는 것을 즐기지 않고 그럴 수도 없지만 여전히 술자리는 즐겁다.

코로나 격리를 마치고 기념으로 맥주 한 캔을 뜯었다. 후유증으로 맛이 백 프로 잘 느껴지지 않기도 했지만 어쩐지 흥이 나질 않아 작은 캔 하나를 다 마지지 못하고 버렸다. 그 뒤로도 한동안 맥주에 대한 갈망이 평소 같지 않길래 이제 나의 음주 한계치에 도달했다고 생각했다. 그래 이 정도 먹고 마셨으면 살 뺄 일만 남았지, 쫙 빼고 새로운 인생을 살아보자 야심 찬 상상도 했다.

그러다가 주말에 중식당에서 먹은 칭다오가 나를 각성시켰다. 혼자 큰 병으로 두 병을 가뿐히 비웠다. 올해 먹은 맥주 중 가장 꿀맛 같았다. 낮에 먹어 더 그랬을까? 그날 이후로 맥주의 맛이 다시 좋아졌다. 날이 점점 더워지니 야외 테이블에서 먹는 살얼음이 낀 호프 잔에 든 생맥주도 자꾸 생각난다. 장을 보러 가면 맥주 한 팩씩 사다 냉장고에 쟁여놓고 있다.

나의 의지와 바람과 달리 오래전 맥주에게 사로잡힌 내 본능은 아직도, 여전히 그곳에 머물러 있었다.

나는 맥주의 유혹에 약하다.

내게 아직 맥주는 사랑이다. 그 사랑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너도 한 잔 해!

2022년 8월 현재,

맥주사랑은 계속 이어나가고 있다. 다만 횟수를 많이 줄여나가고 있는 중이다.

이제 진짜 빼야 한다.

(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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