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지난여름에 먹은 수박과 옥수수가 몇 개인지 알

2022년에 꺼내먹는 2021년의 글 <읽는 먹방>

by 덩이

당신이 지난여름에 먹은 수박과 옥수수가 몇 개인지 알고 있는가


수박과 옥수수.

내가 여름을 좋아하는 이유다.

제철에 먹는 수박과 옥수수는 여름의 기억을 더 풍성하고 행복하게 만든다.

그들은 우선 향기로 나를 사로잡는다.

수박을 반으로 가를 때 스프레이처럼 퍼지는 싱그러운 향기와 갓 쪄낸 옥수수의 구수한 단내가 정말 좋다. 여름의 향기다.

좋아하는 것과 달리 수박 한 통을 사는 것은 조금 고민해야 할 일이다. 수박은 자른 순간부터 신선도가 떨어지니 사과처럼 길게 보관하면서 먹을 수 없기 때문이다. 수박 반통은 뚝딱 할 것 같은 신랑은 어떤 과일이든 크게 좋아하지 않아 수박 지분이 매우 작다. 그래서 수박을 자른 순간부터 약간의 압박감이 생긴다.

싱싱할 때 먹여야 해!

싱싱할 때 먹어야 해!

예전에는 수박의 줄무늬를 따라 반으로 자르고 다시 반으로 자른 뒤 부채꼴 모양으로 잘라서 먹었다. 부채꼴 모양의 수박을 하나씩 들고 과육을 한 입 가득 베어 물면 달달한 과즙이 수박을 쥔 손으로 주르륵 흘렀다. 수박을 깨무는 청량한 소리가 와삭하고 울린다. 껍질째 들고 빨간 수박 속살을 베어 먹으며 씨를 토토토 뱉어내는 즐거움이 함께 있었다. 남은 수박은 랩에 잘 싸서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가 다음에 먹을 때 같은 방법으로 잘라서 먹는다. 자른 반 통을 호쾌하게 숟가락으로 퍼먹기도 했다. 그렇게 먹는 경우는 이 반 통의 수박을 남기지 않겠다는 의지가 있을 때이다.

요즘에는 수박 껍질을 다 잘라내고 나서 빨간 과육만 밀폐용기에 담아 보관한다. 잘게 자르면 수박 즙이 많이 나오니 우선 큰 덩어리로 잘라 놓고 먹을 때 덩어리 수박을 꺼내 잘라먹는다. 다 자른 껍질을 다시 한번 잘게 잘라 음식물 쓰레기봉투에 정리하고 버리는 것까지 꽤 수고롭지만 한 번 하고 나면 편안하게 수박을 먹을 수 있다. 잘라놓은 수박 과육 겉면에 보이는 씨도 칼끝이나 포크로 살살 긁어내면 씨를 여러 번 뱉어낼 번거로움 없이 더욱 편리하게 먹을 수 있다.


옥수수는 나에게 요물이다.

일단 시작하면 두세 통은 뜯어먹어야 성이 찬다. 배는 진즉에 부르지만 알갱이를 앞니로 뜯어내고 어금니로 씹는 식감을 즐기다 보면 끊임없이 들어갈 것만 같다. 여름 한 철에만 진짜 맛있는 옥수수를 파는 가게 두 곳을 안다. 두 집의 공통점은 그날 아침에 딴 강원도 옥수수를 가져와 삶아낸다는 점이다. 우리 시어머님의 옥수수가 딱 그 맛이다. 여름 아침에 딴 옥수수를 바로 삶아내면 아무것도 안 넣어도 달고 맛있다. 싱싱함이 설탕이자 감미료다.

집에서 직접 삶아먹는 경우엔 옥수수 껍질을 한 겹 정도 남겨둔다. 그렇게 삶으면 옥수수맛이 더 진해지고 냉동실에 보관했다가 다시 쪄먹어도 남겨둔 껍질 덕분에 더 촉촉하게 맛이 되살아난다. 결혼 이후 여름철마다 어머님이 한 박스 꽉 채워 보내주신 옥수수를 대량으로 삶는 작업을 해 오고 있다. 껍질을 벗기고 씻고 삶아내는 과정이 번거롭고 힘들긴 하지만 저녁 몇 시간을 고생하면 냉동실이 옥수수로 그득해지니 나에겐 행복이다. 옥수수 역시 신랑이 좋아하지 않기에 거의 모두 내 차지가 된다.

지금은 냉장고에 수박도 옥수수도 없다. 수박은 지난주까지 열심히 먹었으니 다음 주쯤 한 통 다시 도전할 계획이고 어머님의 옥수수는 곧 여물어 택배로 배달될 거다.

여름은 생각보다 짧다. 우리 집 기준으로 수박 세 통과 옥수수 한 상자면 여름이 끝난다.

수박과 옥수수를 만끽하자!

여름이니까!


인상 피자!

2022년 현재, 시어머님이 한가득 보내주신 옥수수를 삶아 냉동실에 넣어두었다.

어머님 말씀대로 아랫집과 옆집과 나눠먹으니 마음이 더 푸근해진다. 잘 익은 수박도 냉장실에 한 통 가득 잘라 놓았다.

흐뭇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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