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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칼랫 May 31. 2021

오체투지, 삼보일배, 신에게 가는 길

신에게 묻고 싶나요? 체력이 필요해

오늘 엄마랑 TV를 보다가 여행채널을 보았다.

어디였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안나는데, 중국 오지 어딘가였다.


현지인들이 몇걸음을 걷다가 바닥에 엎드리고, 또 몇걸음으 가다 엎드렸다. 오체투지(불교의 절하는 방법 중 하나. 먼저 두 무릎을 땅에 꿇고, 두 팔을 땅에 댄 다음 머리가 땅에 닿도록 절을 한다.)라고 부른다고 했다. 삼보일배와도 비슷하댔는데, 삼보일배보다 더 납작 엎드렸다.


중국을 돌아보며 소개하던 한국인 리포터역할의 중국학과 교수님이 그 오체투지를 따라해보셨고, 20미터도 가지 못한채 헥헥 힘들어하셨다.


엄마는 마음이 너무 힘든 사람들은 저렇게 오체투지나 삼보일배를 하며 마음을 다스리기도 한다는 말을 덧붙였다.


정말로 오체투지와 삼보일배를 하면 마음이 덜 힘들까?


오체투지와 삼보일배를 하려면 허벅지가 튼튼해서 무릎이 건강해야 할 수 있단 생각도 들었고 고강도 유산소를 소화할 수 있는 체력도 필요해보였다. 그럼 마음이 덜 힘들기 위해서는 다리도 튼튼해야하고 체력도 강해야하는게 아닐까라는 의문까지 생각이 확장되었다.


답을 구하기 위해 신에게 가는 길에서는, 체력적으로 무리가 될만한 과업을 부여받으며 고통을 이겨내는 의지를 시험받게 될 것이다. 이를 이겨내려면 체력과 의지 두가지가 모두 필요하다.


사람들은 의지로 많은 것을 극복할 수 있다고 믿는 것 같다. 그런데 체력이 의지를 강화하는데 도움이 된다고까지는 생각을 못하는 듯하다. 사실 내 생각으로는, 의지는 체력의 하위개념 정도일 뿐이다


의지는 뇌에 의한 것이고, 뇌는 신체부위다. '체력이 강하다'의 실제의미는 몸의 힘이 강하다는 뜻이며, '몸'은 뇌를 포함한다. 결국 체력은 의지의 상위개념이다.


만성통증에 지쳐서 죽고싶던 고등학생 때의 어느날.

'베란다 창문으로 떨어지면 내일부터는 아플 몸이 없을텐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이 끝나면 어김없이 나를 자신의 눈동자보다 소중히 여기는 엄마가 떠올랐다.


통증이 사라지길 바랐는데 어떻게 해야할지를 전혀몰랐다.

그렇지만 포기할 수는 없었다.


'아프니까 배째. 나 이제 나으려고 노력안할래'의 '포기'는 의미가 없었다. 그런 포기를 해봐야 통증의 내일은 다시 찾아오고 포기를 했든 안했든 똑같은 날이 돌아오니까. 내가 포기를 해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는다니, 그렇다면 절대 포기할 수 없다.


신이 있다면 묻고 싶었다.

'제가 무엇을 그리 잘못해서 시지프스 마냥 돌 굴리듯 고통스럽게 하루하루를 살아가야합니까. 그는 신에게 죄를 지은 중년이었을텐데 저는 그와 같은 죄를 짓기에도 어린나이가 아닌가요?'


테라밴드를 당기고 밸런스보드위에 올라가는 것, 바를 잡고 탄듀를 하고 그랑줴떼를 뛰는 것, 폴에 매달려 몸을 뒤집고, 매트에서 스쿼트를 하는 이 모든 것이 내게는 신을 만나러가는 과정이었다.


※ 저는 사실 무교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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