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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드카피 Mar 13. 2023

033. 너의 그 시선이 부럽다

첫째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고 있었다. 여러 나라의 다양한 문화를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시리즈 중 한 권이었다. 이탈리아였다. 책의 내용 뒤에는 객관적인 설명 페이지가 몇 장 붙어있었다. 물의 도시 베네치아의 곤돌라 사진, 피사의 사탑 사진, 바티칸 시국에 대한 간략한 설명, 피자 사진과 다빈치와 미켈란젤로 등 대단했던 예술가에 대한 언급, 그들의 대표 작품 한 두 개. 그때 아이가 내게 물었다.

"엄마, 왜 마리아가 예수님보다 커?"

나는 깜짝 놀라서 아이를 쳐다봤다. 아이의 눈에 들어온 것은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였다.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는 하루에도 수백, 수천 명의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고 가는 예술작품이다. 수백 권의 책에 그 사진도 실려있다. 미술사에 관심 없는 사람이라도 사진 한 장쯤은 봤을 정도로 유명한 조각상이다. 그런데 어떤 어른의 입에서도 이런 질문을, 이런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미켈란젤로는 마리아의 성스러움과 어머니로서의 강함을 표현하기 위해 성인 남자인 예수보다 나이 든 여자인 마리아를 더 크고 우람하게 조각했다. 현실적으로는 맞지 않는 비례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조각상을 보고 와 미켈란젤로 작품이다 또는 옷자락이 참 자연스럽네 대단한 조각가야 이러고 지나간다. 마리아와 예수의 인체 비례에 대해 궁금증을 가지지 않는다. 작품 설명에 쓰여있는 걸 보고 아 그렇구나 나중에 이해하는 게 보통이다.


아이들의 관찰력은 어른들의 상상을 초월한다. 눈이 녹으면 봄이 온다고 했던 그 유명한 아이의 대답부터 일상에서 작게 크게 놀라는 말들 속에 그 엄청난 관찰의 내용들이 담겨있다. 대표적으로 아이가 그리는 그림을 보면 평소에 엄마, 아빠의 어떤 부분들을 유심히 보는지 알게 된다. 엄마 구두굽이 자기 구두보다 얼마나 높은지, 아빠가 안경을 끼면 눈 크기가 어떻게 변하는지. 바깥의 꽃들이 어떤 형태로 줄지어 피어있는지, 나무에 곤충이 몇 마리나 매달려있는지, 해가 쨍쨍할 때 그림자가 얼마나 길어지는지 등을 오히려 아이의 그림을 통해 다시 깨닫게 된다.


지난 10년간 광고일을 할 때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는 안테나를 세워야 한다는 것이었다. 세상을 보는 눈을 날카롭게 하라는 것이었다. 트레이닝도 했다. 이렇게 어른들이 간신히 세워야 하는 안테나를 아이들은 세네 개씩 탑재하고 있다. 이런 관찰력과 호기심을 계속 가지고 있을 수 있다면 이 아이가 자라서 못할 것이 무엇일까. 어른들에게 세상은 너무 익숙해졌고 당연해졌다. 이런 내가 아이의 궁금증을 함께 풀어나가는 역할을 해줄 수 있을까. 아이가 관찰해서 얘기하고 또 궁금해할 때, 내가 그걸 무시하거나 알아채지 못하면 어떡하나 이런 걱정이 든다. 사라지지 않게 지켜주고 싶다. 진심으로.


"미켈란젤로 할아버지는 마리아가 예수님을 지켜주고 있는 것처럼 보여주고 싶었나 봐. 그래서 엄청 세 보이게 만들고 싶어서 예수님을 꼭 안고 있는 것처럼 조각했대."

내 대답을 듣고 아이는 아하 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나는 저녁에 아이의 놀라운 관찰력에 대해 남편에게 침을 튀기며 이야기했다. 남편은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표정을 지었다. 어른들이란 대부분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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