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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드카피 Oct 12. 2023

039. 신밧드의 모험 앞에서 라떼를 외친 날



두 아이와 함께 롯데월드에 다녀왔다. 작년에는 첫째만 데리고 키즈존 주변만 맴돌았었다. 올해는 좀 컸다고 두 아이와 키즈존 바깥까지 진출했다. 바로 신밧드의 모험이었다.


"우와~ 엄마도 이거 유치원 다닐 무렵에 처음 탔어!"

아이들의 표정은 엄마가 왜 이렇게 신났지? 였다. 사실 유년 시절 이후로 신밧드의 모험은 처음이었다. 십수년 전인 듯 하다. 십수년이 뭔가 수십년일지도 모르겠다.

살면서 롯데월드를 참 많이 왔었지만 내 기억 속 롯데월드는 지구마을과 신밧드의 모험 이 두 가지로 압축된다. 살면서 큰 충격을 받은 사건 중 하나이니 말이다. 하늘을 덮은 유리를 통해 햇살이 들어오던 날, 수백 수천의 사람들이 바글 거리는 공간에서 엄빠의 손을 잡고 이리 저리 이끌려 다니던 사건. 그 사건의 종착지가 바로 지구마을과 신밧드의 모험이었다. 아쉽게도 지구마을은 이제 폐장이 되어 라떼를 외칠만한 어트랙션은 신밧드의 모험 밖에 남아있지 않다.


"엄마. 이거 무서워?"

"아아니~ 한 두 번 밑으로 짧고 빠르게 떨어지고 끝이야. 하나도 안 무서워~"

두 아이는 키즈존의 어린이 놀이기구와 전혀 다른 분위기에 서서히 압도되는 듯 내 손을 꼭 잡았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겠지만 신받스의 모험, 참 별거 없다. 으스스한 분위기 속을 보트 한대가 달리는데 심지어 안전벨트도 없으니 말이다. 물론 초반에 두 번 떨어지긴 하는데 깜짝 놀라는 수준이다. 하지만 5살, 6살 아이의 입장에서는 다르다. 눈 앞이 불분명한 어둠 속에서 갑작스런 하강의 속도를 느낄 때, 신밧드의 모험 = 롯데월드 라는 공식이 깊게 박히게 된다. 오늘 내 두 아이 역시 그런 듯 하다.


신밧드의 모험을 마치고 내려온 아이들의 표정이 대단했다. 이걸 재밌다고 해야 하는 건지 재미없다고 해야 하는 건지 또 타겠다고 해야 하는 건지 안 타겠다고 해야 하는 건지 헷갈리는 그 표정.

"엄마도 너네만할 때 그랬어~ 무서운데 다음에 오면 또 생각날걸?"

헷갈리고 심드렁한 표정의 아이들은 내가 주저리 주저리 내뱉는 라떼 토크에 귀기울이지 않는다. 그런데 본인들도 무서운 걸 탔다고 어딘가에 자랑은 하고 싶은가 보다.


"아빠 아빠! 나 나 나 어두운데 탔어! 그 악당이 공주 가둔 걸 구하는 거! 그 뭐지 엄마 이름이? 아 그거! 신밧드의 모험! 하나도 안 무서웠어!"

한참 자랑을 해대던 두 아이는 전화를 끊자마자 나에게 말한다.

"다음에 타는 건 좀 고민해볼래."


내 기억 속 어린 내 모습과 어찌 그리 똑같은지 모르겠다. 오늘 아이들이 어떤 꿈을 꾸게 될지 너무 궁금하다. 그리고 수십년 후 자신의 아이들에게 또 어떤 라떼를 날릴지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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