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아련해지는 날이었어요. 언제 처음 봤는지도 기억나지 않은 채 이미 알고 있는 듯한 그 책 때문이었죠.
쉘 실버스타인의 아낌없이 주는 나무, 모르는 사람 대한민국에 없을 거예요.
매일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줍니다. 주로 잠들기 전 시간을 활용해요. 각자 읽고 싶은 책을 가져오라고 해서 읽어주지요. 지금까지 3년째인가 4년째인가 되는데 긴 시간 동안 변함없이 특별한 순간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물론 피곤하고 귀찮을 때도 당연히 있지만요.
하여간 여느 때처럼 그런 저녁이었어요. 큰 아이가 들고 온 책은 아낌없이 주는 나무였습니다. 오랜만에 보는 초록색 책표지가 너무도 반가웠어요.
"어머, 이거 엄마 초등학교 때 처음 본 책이야. 정말 따뜻한 내용이라서 좋아했었어."
엄마가 초등학교 시절에 봤다는 책이라고 하니 아이도 신기해하더라고요. 신이 나서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옛날에 나무가 한 그루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나무에게는 사랑하는 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한 페이지 한 페이지... 천천히 읽으며, 넘기며 책을 읽던 저는 갑자기 한 대목에서 눈물이 핑 돌았어요. 사과도 나뭇가지도 나무기둥도 모두 가져가버린 소년을 기다리는, 밑동만 남은 나무 그림 옆에 이렇게 쓰여있었습니다.
"그래서 나무는 행복했지만... 정말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 대목에서 갑자기 눈물이 핑 도는데 혼자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모르겠더라고요. 두 아이는 엄마 빨리 읽어줘 눈빛으로 빤히 쳐다보고 있지, 갑자기 주르르 울면 뭔가 이상해질 거 같은 분위기지, 간신히 간신히 이상한 목소리를 내가면서 끝까지 겨우 읽었습니다. 정말 제가 듣기에도 삑삑 대는 쉰 소리로 말이죠.
표지를 덮으며 아이들에게 어서 양치하러 가라고 재촉한 후 혼자 가만히 책을 들여다봤어요. 어릴 때는 미처 몰랐던 나무의 마음을 이제야 알게 되다니. 떠난 소년을 기다리면서 나무는 얼마나 외로웠을까. 그러면서도 돌아온 소년의 요구에 뭔가를 줄 수 있어서 얼마나 기뻤을까. 마지막까지 자신의 지쳐버린 나무 밑동을 안간힘을 다해 펴는 나무의 모습이 바로 부모의 모습이라는 걸 그때는 몰랐구나 깨달은 저녁이었습니다.
잠드는 아이들을 가만히 보면서 상상해 봤어요. 이 아이들도 자신들의 관심거리를 찾아 떠나겠지. 그리고 나에게 부모니까 뭔가를 달라고 요구하겠구나. 그때 내 마음이 오늘 알아챈 나무의 마음일까 상상해 봤죠.
아직 잘 모르겠어요. 아쉬움과 개운함, 간단히 말하면 시원 섭섭 그 어디쯤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저런 생각 끝에 하나 확실한 건 명작은 이래서 명작이구나 하는 거였고요.
수 십 년(?)만에 다시 마주한 책 덕분에 마음이 아련해진 날, 또다시 수 십 년 후에 내가 죽어도 이 책을 살아있겠지 하는 생각까지 하며 간신히 잠이 들었습니다. 내일은 아이들이 어떤 책을 들고 와서 내 맘을 또 어지럽힐까 궁금해하기도 하면서요.
... 하여튼 책은 참 대단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