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악귀에 이런 대사가 나와요.
"저런 데 살아도 힘든 일은 있겠지? 근데 힘든 일도 저런 데서 겪고 싶다. 그럼 좀 행복하게 불행할 수 있을 것 같아."
대중문학평론가 정덕현의 책 '어느 하루 눈부시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를 보다가 발견한 대사예요.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어요. 행복과 불행은 상대적이라서 누군가의 불행이 누군가에게는 어느 정도의 행복으로 느껴지기도 할 것이라고. 악귀를 쓴 김은희 작가도 그런 생각을 염두에 두고 대사를 썼을 거예요.
얼마 전 손해를 본 일이 문득 생각났어요.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덥석 진행한 일이라 순식간에 손해가 났죠. 그날 당장은 나에게 왜 이런 일이 라는 생각을 했어요. 상황도 원망스럽고 깊이 생각하지 않은 나 자신도 밉고요.
하지만 다음 날 생각이 달라지더라고요. 그 정도 손해를 봤지만 내 일상에 지장이 없다는 걸 깨달았거든요. 난 평소처럼 아이들을 유치원에 보냈고, 오늘 저녁거리로 마트에서 뭘 살까 고민하고, 이번 달 가스비를 낼 돈이 있더라고요.
불행이 닥쳐올 때 불행한 것에만 집중하고 골몰하면 그 좁은 구덩이에 파묻혀서 다른 중요한 것들을 또다시 놓치게 돼요. 가족들에게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어요. 특히 아이들에게요.
"오늘 걷고 수고한 팔다리에게 감사해. 맛있는 군것질 잘 소화시켜 준 위랑 장한테 고마워하고. 눈한테도 오늘 하늘 볼 수 있게 해 줘서 고맙다고 운동 좀 시켜줘."
그러면 아이들은 키득키득 웃으면서 지들 몸을 쓰담쓰담합니다. 고마워 고마워하면서요.
이렇게 매일매일 작은 감사들이 쌓이면 나중에 커서 큰 불행이 닥쳐도 다시 일어날 힘을 금세 찾을 거라고 전 믿어요. 행복과 불행은 찾아오는 것이기도 하지만 스스로 찾을 수도 있는 거니까요.
행복하게 불행하기. 참 따뜻한 인사이트를 발견한 오늘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