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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초 1, 논술이고 나발이고

by 레드카피

제가 왜 이런 교육관을 가지게 되었는가를 말하려면 먼저 제 친정 엄마 얘기를 안 할 수가 없겠네요.

엄마는 저에게 사교육을 시키지 않았어요. 물론 제가 자기주도적 어린이라서 그렇기도 했습니다만(하하). 그 당시에도 선행학습은 유행했고 빨간펜이지 구몬이니 많은 학습지들이 있었어요. 하지만 엄마는 저에게 그 어떤 것도 시키지 않았습니다. 딱 두 개만 시키셨어요.


많이 읽고 많이 써라.


그리고 무엇보다 그 두 가지를 엄마도 함께 하셨지요. 먼저 책을 읽으셨습니다. 그것도 아주 많이요.

집에는 도서관 못지않게 책이 쌓여있었습니다. 물론 엄마가 읽는 엄마 취향의 책들이었어요. 주로 소설과 말랑말랑한 에세이들이었고 어린 제가 읽기에는 너무 이르고 턱도 없는 책들이었죠.

하지만 어린 제가 직접 읽지 않아도 엄마의 책들은 제 마음속에 어떤 씨앗을 심었더라고요. 책을 일상 속에 넣어 두는 건 당연한 거라는 생각의 씨앗을 말이죠.

그리고 두 번째, 글을 쓰셨습니다. 거창한 글을 쓰거나 하는 건 아니었지만 소소한 칼럼을 쓰셨어요. 그때 당시에는 몰랐지만 지금 엄마의 글들을 떠올려보면 그건 자신의 하루, 감정들을 향한 어떤 칭찬 같은 게 아니었나 싶어요. 아직도 기억이 나네요. 엄마가 쓴 칼럼의 제목은 "바꿀 수 없는 내 옷"이었어요.

교직 생활을 오래 하시면서 수많은 아이들을 보고 수많은 부모들을 만나면서 왜 힘든 일이 없었겠습니까. 월급이 들어오면 카드 회사가 들고 튀는 그 시절 고충 역시 똑같았을 테고요. 하지만 엄마는 바꿀 수 없는, 바꾸고 싶지 않은 내 옷이라고 표현했어요. 그만큼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애정을 가지고 있다는 걸 한 문장으로 알 수가 있었죠.


매일같이 책을 읽고 일기를 쓰는 엄마를 보며 자란 저는 19살이 되던 해, 수능 언어영역에서 별다른 공부 없이 우수한 점수를 받았습니다. 다른 거 없었어요.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딱 그 두 가지를 15년 동안 한 거죠.

2025년도 올해 제 첫 아이가 초등학생이 됩니다. 아이는 작년부터 띄엄띄엄 그림일기를 쓰고 있어요. 유치원에서 아이들에게 권유한 게 시작이었고요. 아직 습관이 안된 아이는 일기 쓰기를 귀찮아하기만 합니다. 당연하죠. 처음이니까요.

아이가 물어보더라고요.

"엄마, 일기는 왜 쓰는 거야?"

응 그건 말이야... 하고 대답하려던 저는 갑자기 반성모드에 들어갔어요. 아이를 낳기 전까지만 해도 최소 일주일에 두세 번은 기록하던 나의 일상들을 어느 순간 탁, 하고 놔버린 걸 깨달았거든요. 네. 이제야 말이죠.


일기는 글쓰기에 도움이 되고 대학 갈 때 논술시험의 밑바당이 되며 너의 토론실력의 거름이 된다 뭐 이따위 텅 빈 잔소리를 늘어놓는 대신 아이의 눈과 마음에 읽는 엄마, 쓰는 엄마를 심어주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당근을 하나 던졌죠.

"네가 일기를 하루하루 써서 이만큼 모이면 엄마가 책으로 엮어줄게."

아이의 눈이 동그랗게 커지는 걸 봤어요. 자신이 쓴 하루하루가 책이 된다니 얼마나 멋진 일인가 머리를 굴리는 게 바로 보일 정도로 말이죠.


그래서 제 교육관이 이렇습니다. 논술이고 나발이고 아이와 '함께' 많이 읽고 많이 쓰려고 해요. 제 엄마가 그러셨던 것처럼요.

하지만 막연히 읽고 쓴다 이건 아니에요. 구체적으로 아이와 두 가지를 함께 하려고 합니다. 첫 번째는 일기. 두 번째는 간단 독서 감상문. 독서 감상문이라고 처음부터 거창하게 시작하면 아이에게 부담이 될 테니 한 줄 감상평 정도로 시작해야겠네요.

덧붙여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딸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싶어요. 엄마에게 일기를 돌려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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