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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미숙 Jan 04. 2022

설움

떡국 한 그릇이면 충분히 달랠 수 있지.

서럽다.

1. 원통하고 슬프다.



백신 3차 접종을 한 날 몸이 아팠다.

1.2차 접종은 너무 멀쩡해서 물을 맞은 게 아닐까 싶었는데

나도 인간이었다. 아팠다. 타이레놀을 두 알 삼키고 괜찮다고 되뇌었다.


전부터 생각해 둔 망원동 작은 작업실을 덜컥 계약했다.

추운 날 락스를 발라가며 청소했고

필요한 책상과 의자들을 당근으로 구해 채웠다.

나의 무모함에 소름이 돋았다.


친구가 갑상선암 진단을 받았다는 연락을 받았다.

친구는 수술을 하게 되고 치료를 받을 거라고 했다.

얼마 전 유방암 수술을 한 친구가 치료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었고

나는 현기증을 느꼈다.

 

2021년의 마지막 날 원래 돌아가야 할 곳처럼 부모님 댁에 갔다.

저녁식사를 했고 사는 이야기를 나눴다.

부모님은 12시도 되지 않아 주무시러 방에 들어갔고

나는 홀로 티브이 앞에 앉아 보지도 않을 연기대상에 집중하는 척했다.


2022년의 축포가 터지고 기다렸다는 듯 지인들에게 새해 인사를 전했다.

억지로 형식에 맞춰 덕담을 지인들에게 보냈고 나도 덕담을 받았다.

하트가 날리는 이모티콘도 보냈고 호랑이 사진도 받았다.

새해 인사가 끝나고 나니 당연하게 설움이 복받쳐왔다.

이유는 너무나도 많았다.

진정시키려 숨을 들이마셨다 몰아 쉬었다.

역시나 소용이 없었다.

 

결국 2021년에 넘어져 다친 마음의 상처까지 욱신거렸다.

후유증 같은 아픔이 사그라들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창문을 열고 찬 바람을 맞았다.

찬 바람 때문인지 눈에 간신히 그렁그렁 매달렸던 눈물이

성급하게 흘러내렸다. 쓸어 내버리고 밖을 바라봤다.


2021년 이제 영원히 져버려서 다시 오지 않는다는데 왜 이렇게 서러까.

즐거웠던 것보다 속상했던 일이 많아서 그렇겠지

'서러워도 어쩌겠어. 안고 그냥 가자'

적당히 협상한 뒤 창문을 닫아 꽁꽁 잠그고 밤을 보냈다.

  

분주한 기운에 일어나 나가보니

엄마가 한창 떡국을 끓이고 있었다.

"마침 일어났네. 다 끓였어. 너 좋아한다고 만두도 넣었어. 아빠가 시장 가서 사 온겨"

식탁에 올려진 떡국이 먹음직스러웠다.

"맛있겠다"

숟가락을 드는데 아빠가 만두를 덜어 주셨다.

한 술 떠먹는 떡국이 너무 따뜻했다.


그 사이를 비집고 갑자기 들어오는 찬바람.

환기시킨다고 잠시 열어두었던 거실 창문 사이로 들어오는 바람이었다.

나는 뿌옇게 성애가 껴 밖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창문을 닫아 버리고

다시 자리에 앉아 따뜻한 떡국을 먹었다.


'서러워도 떡국은 너무 맛있잖아'


2. 떡국 한 그릇이면 충분히 해소할 수 있는 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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