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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미숙 Jan 14. 2022

6. 우울해도 흥은 못 참지

음악만 들어도 몸에서 피가 돌고 몸이 절로 움직여진다.

우울증 증상에도 여러 가지가 있지만 제가 제일 크게 느낀 증상은 무기력감이었습니다.

의욕 저하에서 오는 피로감, 회의감 때문에 일상생활을 정상적으로 하기 어려웠죠. 무기력감이 우울감으로 이어지면서 감정적으로 힘들다는 것을 인지했지만 "내가 뭐 그렇지.."라는 생각으로 무시하고 넘기기를 몇 년간 지속해오다 병을 키우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병원에 가야 한다고 생각했을 때는 불면증이 심해져서였습니다. 무기력감은 내 탓을 하기 충분했지만 불면증은 내 탓만이 아니고 도움이 필요하다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누가 나를 자게만 해준다고 한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았죠. 그래서 우울증 검사를 받았고 의사의 정확한 진단을 받고 치료를 시작했습니다.


치료를 받기 시작하면서는 정상적인 일상생활에 대한 갈증이 더 갈급해졌습니다. 무조건 빨리 무기력감과 우울감을 이기고 밝고 활기찬 모습이 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조급한 마음과 달리 무기력감을 떨쳐내기 어려웠습니다. 다 귀찮고 다 싫고 노력해도 나는 이 우울한 인생에서 벗어나기 어렵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되니 증상이 호전된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았죠. 그래도 치료 의지가 있었기 때문에 치료를 꾸준히 했고 늘 해오던 운동도 열심히 했습니다.


그러던 중 우울감을 최대로 증폭시키는 인생 최대의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생겼고 저는 그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하고 결국 저를 망치기 위한 안 좋은 시도까지 하게 됐습니다. 하지 말아야 할 시도였죠. 병원에서 아침까지 누워있다가 퇴원을 해서 부모님 댁으로 왔고 이후로도 한참을 정신을 차리지 못했습니다. 비몽사몽에 걸음도 제대로 걷지 못하고 있다 다음 날 아침에서야 정신이 들었습니다.


아침에 눈을 떠 천장을 바라봤고 생각에 잠겼습니다. 제 인생에 대한 재설계, 치료에 대한 강한 의지, 후회와 반성 등등이 떠올랐어야 되는데 생뚱맞게도 '에어로빅 가고 싶다'였습니다. 일어나자마자 에어로빅이 가고 싶다는 딸의 말을 들은 엄마는 걱정이 더 깊어졌습니다. "아직 제정신으로 돌아오려면 멀었다"라고 여기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떡하나요. 에어로빅이 하고 싶은 걸.


제가 좋아하는 영화 '타짜'에서 김혜수 배우가 하는 대사 중에 "제가 원래 손발이 찬데... 화투장만 들면 피가 돌면서 혈액순환이 쫙....."라는 대사가 있습니다. 바로 인용 가능하지요. "원래 무기력감이 있었는데 음악만 들으면 피가 돌면서 몸이 저절로 움직여집니다."


우울해도 음악을 들으면 흥이 나고 에어로빅은 하고 싶습니다.


에어로빅은 제게 정말 잘 맞는 운동이었죠. 20살에 시작을 했습니다. 그러다 다니던 에어로빅 강습소가 문을 닫으면서 몇 년 제대로 해보지도 못하고 강제로 운동도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그 시기쯤 에어로빅 강습소가 문을 닫는 곳이 많았습니다. 침체기였죠. 자연스레 운동을 계속 쉬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 서울로 올라와서 그동안 명맥을 이어오고 있던 에어로빅 강습소가 마침 회사 근처에 있었고 바로 등록해 다니기 시작하면서 에어로빅을 다시 하게 됐습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해오고 있습니다. 도합 거의 10여 년의 에어로빅 개인사를 가지고 있네요.


제가 이렇게 애정하고 있는 그, 에어로빅이란 무엇일까요?

에어로빅은 1968년 미국에서 처음 개발되어 70년대부터 시작된 운동입니다. 당시 고안된 에어로빅은 말 그대로 '유산소 운동'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심폐기능을 높여 심폐지구력을 향상하고 심혈관질환을 예방하고 무엇보다 체지방 연소에 큰 효과가 있는 것이 유산소 운동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대중적으로 인지하고 있는 에어로빅은 정확히 '에어로빅 댄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경쾌한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면서 유산소 운동 효과를 얻을 수 있는 운동이지요. 음악이나 감정, 스토리를 몸으로 표현하는 무용과는 엄연히 다른 분야입니다.  춤을 잘 추지 못하는 사람들도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어렵지 않은 동작들이 구성되어 있고 이 동작들은 신체 각 부위의 발달을 돕는 역할을 합니다. 스포츠 에어로빅 경기가 있을 만큼 그냥 단순히 춤이라고 보기에는 건강 효과에 비중이 큰 운동으로 정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에어로빅을 시작하려면 몇 가지 간단한 스텝을 익히고 시작하면 좋습니다. 어쨌든 춤 동작이 들어가므로 간단한 기본 스텝만 익히고 시작하면 더 쉽게 따라 할 수 있습니다. 에어로빅의 진행시간은 강습소마다 다르겠지만 보통은 50분에서 60분입니다. 그중 10분은 스트레칭 시간이고 나머지는 격렬한 움직임 시간. 음악을 교체하는 10-20초를 빼면 쉴 새 없이 음악에 맞춰 뛴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호흡도 굉장히 가팔라지고 땀도 많이 납니다. 코로나 때문에 마스크를 쓰고 운동을 하면서부터는 그 호흡조절이 더 중요해지기는 했습니다. 어쨌든 제가 아는 한 최고의 유산소 운동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런 과정을 가지고 있으니 당연히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기도 합니다. 무기력할 기회조차 허락되지 않는 격렬한 운동이죠. 그래서 제가 더욱 에어로빅에 집착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게 너무나도 필요한 운동 같았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매달려 집중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에어로빅 후 잠시 잠깐 찾아오는 활력과 상쾌함이 너무 좋았습니다. 그래서 운동을 빠진 다음 날에는 살이 찐 것보다 기분이 가라앉는다는 느낌이 들어서 힘들 정도입니다. 에어로빅 안 하면 큰일이라도 난 줄 알고 매일 가다시피 했습니다.


이렇게 에어로빅에 집착하는 저를 보고 어느 날 친구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스트레스가 내 몸 세포구조를 바꿔서 암세포로 만드는 역할을 하는데 아무래도 내가 생각하는 너는 일반인보다 몇 배의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생각하거든. 이제와 보니 네가 그렇게 죽자 사자 에어로빅을 간 건 정말 살려고 그런 거구나. 살려고 그렇게 매달린 거였어"라고요.


부정할 수 없었습니다. 나는 나를 깊은 수렁으로 빠드리는 우울감과 무기력감에서 벗어나 살려고, 정말 살기 위해서 에어로빅에 매달리고 있었던 것이 맞습니다. 내 인생을 망쳐보겠다고 끝내보겠다고 시도한 제가 정신을 차리고 한 생각이 에어로빅이라고 한 것은 사실은 미친 것이 아니라 다시 살려고, 살아보려는 의지가 생겼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나는 살고 싶다고 살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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