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할 수도 즐길 수도 없다면 부상을 통해 좀 배워라.
운동의 커다란 범주 안에는 부상이란 것이 꼭 껴있습니다.
제외시켜 보려고 모른 척하려고 따돌려보려고 해도 꼭 끼어서 호시탐탐 빈틈을 노립니다.
늘 부상을 유념하고 있어야 하지만 운동을 하다 보면 부상보다는 근육을 키우는 데 더 집중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부상에 대해 단호하게 말하자면 우리는 부상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운동을 할 때는 주로 사용되는 근육과 관절이 다를 뿐 우리 몸의 모든 기관이 움직이고 활용된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때문에 우리 몸 가운데 부상에서 자유로운 기관은 없습니다. 특히 근육과 딱 붙어 있는 뼈와 관절들은 부상의 위험이 가장 높습니다.
그래도 부상은 피할 수 없는 것일까요?
부상을 방지하는 방법은 있습니다.
운동 시작 전 몸풀기 스트레칭을 충분히 해주는 것이 좋습니다. 이때는 전신의 근육 긴장감을 풀어주고 체온을 적절한 수준으로 올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본격적인 운동을 위한 준비죠. 그리고 운동을 하는 중간에도 무리하게 세트를 끌고 가는 것보다 중간중간 자신의 신체 컨디션에 민감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운동 후 마무리 스트레칭으로 호흡 조절, 릴렉싱이 필요하며 충분한 휴식으로 근육을 쉬게 해주는 것이 좋습니다.
이렇게 완벽하게 다 준비했다고 자신하더라도 부상은 할 말이 있습니다.
방심하지 마라
네. 허리 부상을 당했습니다.
그동안 운동 후 가벼운 근육통은 애교, 바벨이나 기구에 걸려 넘어지기는 일상, 발목 접질리기 무릎 통증은 특별 이벤트였지만 대부분 운동 후 휴식으로 자연스럽게 치유되곤 했습니다. 그동안 몸과 대비되는 가벼운 부상들이 저를 방심하게 만들었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꼭 찍어 먹어봐야 맛을 알고 꼭 뜨거운 것을 만져봐야 뜨거운 지 아는 것도 아닌데 왜 부상은 당하고 나서 침대에 누워봐야 부상 방지에 대한 인식이 뜨이는지 모르겠습니다.
바벨 로우라는 운동이 있습니다. 적당한 무게의 바벨을 들고 양발을 벌린 후 허리는 곧게 펴고 무릎은 약간 구부린 상태에서 자세를 잡아주고 바벨을 수직으로 올렸다 내렸다는 반복하는 운동입니다. 대표적인 등 운동입니다. 부상을 당한 날은 상체 루틴 중 등 운동 위주로 진행을 하고 있었습니다. 렛 풀다운, 암 풀다운, 버터플라이, 로잉을 거쳐 대망의 바벨 로우.
바벨 로우 첫 세트를 마치고 잠깐의 휴식 후 두 번째 세트!! 하나, 둘, 셋, 넷, 우두둑.
너무 아파서 소리도 지를 수 없는 고통을 아시는지요. 차라리 소리를 치면 나았을까요. 그대로 얼어붙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침 옆에서 운동하시던 분이 '우두둑' 소리를 듣고는 놀라 제게 다가와 들고 있던 바벨을 빠르게 내려주셨습니다. 그리고 저보다 더 하얗게 질린 얼굴로 연신 "괜찮아?"라고 물었습니다.
괜찮다고 말도 하지 못하고 정지 자세 그대로 눈물을 뚝뚝. 식은땀 뻘뻘.
관장님이 바르는 파스와 뜨거운 수건을 가지고 달려오셔서 매트에 누워보라고 하셨습니다.
"이대로 움직이기도 힘든데 지금 누워보라고요??"
"일단 누워봐. 그거 지금 조치 안 하면 너 집에 못가"
이를 악물고 매트에 누웠습니다. 누가 때린 것도 아닌데 '으어어 어!' 울부짖으며 매트에 겨우 엎드려 누웠지요. 허리의 고통이 극심했습니다. 허리뼈가 부러진 것은 아닐까요? 생각해보니 저는 뼈를 다친 적도 없습니다. 골절 사고 한 번이 없었습니다. 특별히 아픈 곳도 없었습니다. 아픈 곳이 없어서 나라도 아프자 싶은지 마음이 아픈 것뿐이었습니다.
이를 악물고 고통에 몸부림치는데 뜬금없이 예전에 출산을 한 지인이 진통에 대해 말할 것이 생각났습니다. '허리랑 골반을 해머로 내려치는 고통'이라고 표현했는데 저도 그 기분이 뭔지 조금은 알 것 같았습니다. 그 이유에서인지 저는 마사지 중 너무 아플 때 엄마를 불렀습니다.
"생각보다 엄살이 심하군"
"정말 아파요"
"엄마까지 부르냐"
"엄마"
허리 부상은 효심을 동반하는 것 같습니다.
이런 고통을 느끼며 나를 낳아주신 건가요 어머니. 이번 명절에 전 부치기는 제가 하겠습니다.
그래도 관장님이 마사지를 해주셔서 인지 일어나서 걸을 수 있을 정도는 되었습니다. 우선 근육이완제를 먹고 집으로 돌아가 다음 날 병원 진료가 시작하는 시간만 기다렸습니다. 옆으로 누워있는데도 고통이 심해 해가 뜨기만을 간절히 기다렸습니다.
아침이 되었고 비로소 진료 시간이 문제가 아니라 병원에 가는 것이 문제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는 데 병원을 가야 한다니 앞이 캄캄해졌습니다. 그래도 살기 위해 병원을 가야 한다고 자신을 겨우 달래서 나왔고 집에서 가장 가까운 병원을 골랐는데도 걷는 게 쉽지 않아 이동하는데 20분이나 걸었습니다. 겨우 진통주사를 맞고 물리치료를 받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꼬박 나흘을 집에 누워만 있었습니다.
운동은 꿈도 못 꿨고 나흘 동안 이렇게 해도 아프고 저렇게 해도 아프고 달래 봐도 강하게 꾸짖어도 말 안 듣는 허리를 부여잡고 끙끙거렸지요. 집에 가만히 누워있기만 하니 답답하고 우울했습니다. 다시 어두운 그림자가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 같았지요. 비밀이지만 혼자 울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물리치료, 약의 효과였는지 나흘 뒤부터는 걸을 수도 있게 되었고 일주일 정도 지나니 움직이는 데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움직일만하니 운동 생각이 간절했고 운동부터 하러 갔습니다. (습관이 참 무섭습니다.)
다시 운동을 하러 온 관장님은 저를 보고 괜찮냐 물으시고는 "넌 이제 진정한 프로야. 운동하는 사람 중에 안 다치는 사람 있겠냐. 물론 부상을 안 당하는 게 제일 좋지만 이번 기회에 부상이 얼마나 무서운 건지 느꼈으니까 운동할 때 항상 집중하고 조심하라는 말이야. 그게 프로야."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저는 프로가 되어서 기뻐해야 하나요."라고 말대꾸하고 싶은 것을 꾹 참았습니다. 그래도 빨리 조치를 취해주신 덕에 집에는 걸어갈 수 있었기에 그 은혜에 보답하기로 합니다.
"감사합니다. 관장님"
어쨌든 부상을 통해서 제가 업그레이드된 것은 사실입니다.
그동안 늘 내적인 상처에만 민감하게 반응했었습니다.
마음 건강을 되찾겠다고 운동을 시작한 뒤로 한 번도 외적인 부상에 대한 경각심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마음의 부상에만 온 신경을 기울이고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다치고 나서야 알게 된 것이지만 건강하게 지금 운동하고 있는 내 몸이 너무 소중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나는 더 이상 나를 아프게 하지 않겠습니다. 내가 너무 소중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