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일요일, 이른 아침부터 엄마와 아빠가 다투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깨고도 한참을 모른 척 눈을 감고 있었는데, 뭔 일 때문인지는 파악이 될 정도의 볼륨이었다. 방에서 나와 보니 애기 주먹만 한 피조개 10kg인지 20kg인지가 싱크대에 놓여있었다. 갯벌에서 갓 캐왔는지 진흙이 덕지덕지 묻은 채로 말이다. 전말은 이러했다.
어느 단체에서 나름의 직책을 맡고 있는 아빠가 체육대회에 가는 날이었다. 그런 아빠의 사모님으로서, 엄마는 체육대회 때 사람들이 나눠먹을 음식을 해갈 요량이었다. 날이 쌀쌀해졌으니 어묵탕을 한 솥 준비해 가면 되겠다고 일주일 전부터 계획했다. 나도 아빠도 분명히 그렇게 들었다. 그런데 당일 아침에 갑자기 어묵탕으로는 부족할 것 같다며 엄마 혼자 청량리시장까지 가서 저 피조개들을 이고 지고 온 것이다. 체육대회까지는 두세 시간 남짓 남은 상황. 그 시간 안에 저 시커먼 피조개를 닦고, 해감하고, 데치고, 껍데기를 까야했다. 아빠는 왜 시키지도 않은 사서고생을 하느냐며 성을 냈고, 엄마는 피조개 앞에서 아차 싶은 얼굴로 서 있었다. 나는 눈곱도 안 떼고 싱크대 앞에 서서 피조개 공정에 들어갔다. 이미 사온 걸 어떡하나, 해야지. 잔소리를 할 거면 도와주고 나서 해야 한다. 내가 깨달은 바로는 그렇다.
엄마의 사서 고생 시리즈는 셀 수 없다. 그때마다 아빠는 옆에서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성을 낸다. 3N 년 평생 변하지 않는 우리 집 풍경이다. 얼마 전에는 마트에 다녀온 엄마가 황망한 얼굴로 “엄마 또 사고 쳤다.”라고 하는 거다. 뭔 말인가 싶었는데 곧이어 실한 알타리 무가 두 상자인가 배달이 왔다. 두 단만 산다는 게, 두 상자가 됐단다. 어떻게 하면 두 단이 두 상자가 되지. 그렇게 엄마는 또 그 많은 무를 닦고, 절이고, 양념을 했다. 냉장고에 저게 다 들어갈 자리는 있을까 의문이었는데, 다음 날 엄마는 곰탕 끓이는 들통에 김치찌개를 끓였다. 새 김치를 들이기 위해 헌 김치들이 떼죽음을 당한 현장이었다.
아주 오래전에 건너들은 이야기가 생각났다. 한평생 일만 하던 어머님이 복권에 당첨됐는데, 당첨금을 타고 며칠 후에 수술을 받다 돌아가셨다는 비극적인 이야기다. 결국 그 돈은 한평생 놀음에 빠져 살았던 남편의 차지가 됐다고, 그 어머님의 팔자가 참 기구하다고 다들 입을 모아 얘기했다. 우리 엄마라면 어땠을까? 복권 1등에 당첨이 돼도 자식들에게 다 퍼주고, 또 시장에 가서 무언가를 이고 지고 사 올 것이다. 돈이 생겨도 깐 마늘이 아니라 통마늘 한 다라이를 사서 하루종일 까고 있을 것이고, 어디서 고구마 순을 잔뜩 얻어 와서는 손톱 밑이 까매지도록 다듬을 것이고, 여전히 장을 담그고 김치를 담글 것이다. 그리곤 그걸 가족들이며 주변 사람들에게 먹으라고 나눠주겠지. 그것이 늘상 엄마가 걸어온 길, 엄마가 만든 팔자인 것이다. (물론 정말 복권 1등에 당첨된다면 모를 일이다.)
주변 사람들을 봐도 그렇다. 당하는 사람은 계속 당하고, 일하는 사람은 계속 쉬지 않고, 노는 사람은 계속 논다. 팔자라는 게 정해져 있다지만, 결국엔 내 선택으로 내 발로 걸어온 길 아닌가 생각했다. 없는 일도 만들어서 사서 고생하는 게 우리 엄마가 정한 팔자, 그런 엄마를 외면하지 못하고 늘 안타까워하며 여기에 이렇게 글로나마 속을 푸는 것이 내 팔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