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에서 이런 문장을 본 적이 있다. '엄마 없이는 못 살지만, 엄마랑은 못 산다.' 왠지 공감이 돼 웃음이 났다. 엄마가 이 세상에서 사라진다는 상상만 해도 눈물이 줄줄 나는데, 엄마랑 꼭 붙어서 평생 산다는 상상을 하면 그건 또 다른 문제랄까.
늘 혼자 사는 것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 굳이 그럴 필요가 없는 감사한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자취 브이로그 같은 것들을 보며 있지도 않은 내 집에 놓을 조명과 스피커와 주방도구 같은 것들을 계획했다. 아침에는 가볍게 요거트에 그래놀라를 먹으며 매일 듣는 뉴스를 틀어놓고 (지금은 요거트가 애피타이저다. 엄마의 말에 의하면 아침밥을 거르면 치매에 걸릴 수 있기 때문이다.) 욕실에서는 내가 좋아하는 샴푸 향기만 나고 (지금은 한방 샴푸와 알뜨랑 비누 냄새가 함께 한다.) 냉장고에는 나에게 필요한 식재료들만 적당히 채워져 있는 (지금은 꽝꽝 언 잠재적 흉기들이 꽉 들어차있다.) 손바닥만 한 공간이어도 내가 좋아하는 오디오와 향기와 나의 취향으로 가득 채운 공간이 꼭 갖고 싶었다.
일을 시작하면서부터는 독립 욕구가 더 커졌다. 방송국은 대체로 우리 동네와 멀었고, 퇴근시간은 너무 늦었고, 콩알만 한 월급에서 택시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이 작은 벌이에 월세까지 떼어주면 돈은 언제 모으나. 아무리 멀어도 서울은 서울이었기에 자취는 나한테 큰 사치였다. 그렇게 돈벌이한 지 10년 차쯤 되었을 때, 이제는 보증금도 내고 월세도 낼 수 있을 것 같을 때 드디어 집을 나가기로 마음먹었다. 이게 뭐 대단한 얘기라고 며칠을 고민하다가 엄마에게 어렵게 말을 꺼냈다. 그런데 내 얘기를 들은 엄마의 반응이 놀라웠다. 박수 치며 제발 나가라는 것도 아니고, 배부른 소리 한다고 화를 내는 것도 아니고, 엄마는 의외로 굉장히 서운해했다.
엄마의 주장은 이러했다. “결혼하면 엄마랑 평생 떨어져 살 텐데, 왜 그 시간을 앞당기려고 해?" 일단 내가 결혼을 할지 말지도 모를 일이지만, 세상 서운한 얼굴로 날 붙잡는 엄마를 보고 있자니 큰 불효를 저지르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날 이후로 엄마는 며칠간 온갖 감언이설로 나를 꼬셨다. 엄마가 밥 맛있게 해 주겠다, 이제 네가 있을 때는 액젓 안 끓이겠다, TV 소리가 너무 크면 거실에서 TV도 안 보겠다 등의 말을 들을 때마다 나쁜 딸이 되는 기분이었다.
자식들 밥 해 먹이는 재미로 30년을 넘게 산 엄마다. 우리가 성인이 되면서 점점 집에서 밥 먹는 일이 줄어들게 됐을 때 속상해하던 엄마의 얼굴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나마 밥 잘 먹던 아들이 일 때문에 나가 살게 되면서부터는 반찬 해다 주는 재미로 사신다. 예전엔 그런 엄마가 안타깝기도 하고, 그래서 잔소리도 많이 했는데 이제는 그 마음을 알기에 입 꾹 다물고 엄마가 밥을 해주면 그냥 맛있게 먹는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이래도 되는 걸까? 난 그냥 엄마가 우리 밥 해주는 시간 좀 줄이고, 대신 엄마를 채우는데 더 시간을 썼으면 하는 마음인데. 평생의 숙제가 자식의 건강, 자식의 결혼, 자식의 안정이 아니라 본인의 건강과 행복이기를 바라는 마음인데. 참 내 마음대로 안 되는 게 자식이라더만, 부모님도 그렇다.
나의 독립에 앞서 엄마의 독립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바라는 이 브런치북의 엔딩은 어쩌면 엄마의 독립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