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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 Oct 27. 2024

이기적 효도



제주에 놀러 갔다가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한 어르신을 봤다. 비행기 출발은 계속 지연됐고, 좌석은 좁았고, 옆에 앉은 가족들은 어르신에게 목은 안 마른 지, 화장실에 가고 싶진 않은지 등을 수시로 물었다. 큰 소리로 말이다. 그런데 나는 1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어르신 목소리는 한 번도 못 들었다. 그저 흐릿한 얼굴로 끄덕- 하거나 절레- 하거나 그뿐이었다. 저 어르신에게 이번 여행은 어떤 시간이었을까? 바라고 바라던 가족들과의 휴식이었을까, 예기치 못한 체력 소모였을까.


오랜만에 일도 약속도 없는 주말이면 갑자기 효녀 코스프레가 하고 싶어 진다. 부모님을 데리고 나가 맛있는 밥도 사드리고, 백화점도 구경하고, 괜찮은 게 있으면 사드리고 싶었다. 됐다는 엄마를 억지로 끌고 나가 밥을 먹였다. 엄마는 시종일관 뚱한 표정이었다. 계속 집에 가고 싶어 했다. “살 것도 없는데 뭐 하러 백화점에 가냐.” “얼른 집에 가서 아들 반찬해줘야 한다” 하는 식의 말을 들으니 짜증이 났다. 딸내미가 효도 좀 하겠다는데 왜 이렇게 비협조적이지? 근데 제주에서 오는 비행기 안에서 아차 싶었다. 그날의 외출이 엄마가 바라던 거였나.


엄마는 아직도 무거운 짐은 본인이 들려고 한다. 엄마가 더 힘이 세다고, 내 팔 부러진다고. 그런데 내 입장은 그렇지가 않다. 정말로 엄마가 힘이 더 셀 지언정, 남들 눈에는 엄마 손에 더 무거운 짐을 들리는 못난 딸처럼 보일 것일 테니. 그렇게 우리는 아직도 마트 앞에서 짐 하나를 두고 실랑이를 벌인다. 엄마 눈에 나는 아직도 챙겨줘야 할 게 많은 애인 것이다. 그런 애가 다 컸다고 부모님을 데리고 다니며 밥도 사고, 옷도 사고 하는 게 엄마는 마음이 영 불편한 것이다. 그렇지만 어떡해 엄마, 나는 벌써 3N살이나 먹었는 걸.


이기적으로 효도하기로 마음먹었다. 나중에 부모님이 그리워지게 되는 어느 날, 아마도 가장 아파할 미래의 나를 위해 미리 쌓아두는 적금 같은 것이다. 조금이라도 더 죄책감을 덜고, 조금이라도 덜 아프려고 미연에 방지해 두는 것이다. 그게 먼 미래의 내가 살 길이다. 어차피 자식들의 이기적인 마음으로 하는 효도라면 부모님도 부담 없이 받아주는 것이 피차 서로에게 좋은 것이다. 그러니까 엄마, 제발 그 패딩 그냥 좀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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