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 갈 일이 부쩍 늘었다. 나도 나지만, 부모님의 몸도 하나 둘 고장이 나는 것 같다. 한 번은 말도 없이 혼자 병원에 간 아빠에게서 전화가 왔다. 수면 내시경을 받으러 왔는데 보호자가 있어야 진행이 가능하다고 했단다. 어휴, 진작 말하지! 잔소리가 쏟아지려는 입을 틀어막고 부리나케 병원으로 향했다. 검사를 마치고 침대에 누워있는 아빠를 만났다. 잠에 취해서 계속 눈을 감는 아빠에게 간호사 선생님은 "눈 감으시면 안 돼요"라고 연신 말하셨다. 하지만 아빠 눈꺼풀은 이미 천근만근 다시 잠에 들기 직전이었고, 그저 눈 감지 말라는 말 밖에 할 수 없는 간호사 선생님을 대신해서 나는 틈틈이 아빠의 뺨을 때렸다. 이러라고 보호자를 부른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몇 년 전에는 아빠가 부정맥 판정을 받았다. 아침저녁으로 참 많은 약을 먹었다. 그러다가 약만으로는 부족했는지 병원에서 시술을 권했다. 심장에 작은 장치를 심어서 실시간으로 심장 리듬을 체크하는 시술이라고 했다. 역시나 혼자 병원에 갔던 아빠는 의사 선생님께서 상세하게 설명해 주셨을 내용들을 아주 짧고 간결하게 가족들에게 전달했다. 수술이 아니라 '시술'이고, 별 것 아닌 간단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시술 전날, 가족들이 챙겨준 입원 가방 하나를 덜렁 들고서 아빠는 또 혼자 병원으로 향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좀 달랐다. 병원에서는 시술 일주일 전부터 아빠의 '보호자'인 엄마에게도 모든 상황을 공유했다. 시술 당일에도 당연히 보호자가 함께 해야 한다고 했다. 그리하여 시술 당일, 엄마는 아빠의 보호자로서 나보다 훨씬 일찍부터 병원에 가 있었다. 보호자라고 해서 대단히 책임감 있는 역할을 해야 하는 건 아니었다. 다만 기다리는 것, 그뿐이었다. 시술 중간중간 의사가 나와서 "누구 환자 보호자님!" 하고 호명하는 걸 봤기에 엄마는 내가 올 때까지 화장실도 못 가고 수술실 앞에 앉아 하염없이 기다렸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무소식이 희소식이란 거였다. 보호자를 부른다는 건 시술 중간에 뭔가 잘못됐다는 걸 의미하는 거라고 했다. 다행히도 우리는 시술이 끝날 때까지 한 번도 불려 가지 않았다.
시술이 끝나고 중환자실로 옮겨진 아빠를 보러 갔는데 이번엔 보호자 한 명만 들어갈 수 있다고 했다. 아빠의 보호자로서 홀로 중환자실에 들어간 엄마는 한참을 안 나왔다. 답답한 마음에 전화를 걸었는데 전화기 너머에는 마취에서 깬 아빠가 짜증 내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픈 거 못 참는 우리 아빠, 그 안에서 어지간히 괴로운 시간들을 보냈나 보다. 역시나 간호사 선생님들을 대신해서 엄마가 아빠를 어르고 타일러 가며 수발을 들었다고 한다. (뺨을 때렸는지는 모르겠다.) 아빠도 아빠지만, 엄마가 참 많이 고생한 하루였다.
그날 이후로 나는 의외의 문제로 시달렸다. 시집가라는 엄마의 잔소리가 더 업그레이드 됐기 때문이다. 엄마는 시도 때도 없이 '보호자' 타령을 했다. 사랑하는 딸내미가 나중에 보호자도 없이 외롭게 늙어가면 어쩌나, 보호자도 없이 아프기라도 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인 거다. 그때 가서 생각하지 뭐. 나는 다만 내 보호자를 찾는 마음으로 결혼을 갈망하고 싶지 않을 뿐이다. 나는 오히려 엄마가 걱정이다. 우리 아빠는 저렇게 하염없이 기다리는 보호자는 못 될 텐데 어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