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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 Oct 27. 2024

안방



어려서부터 늘 의문이었다. ‘안방’의 정체는 뭘까? 내 방도 있고, 동생 방도 있고, 하다못해 옷 방도 있는데 왜 엄마 방과 아빠 방은 없을까? (물론 방이 많은 집은 다 있겠지만.) 집에서 가장 큰 방에 커다란 침대 하나만 두는 것도 비효율적인데, 다 큰 성인 둘이서 저 방 하나를 평생 공유해야 한다니. 더우면 옷도 훌렁 벗고, 몇 시간씩 누워서 쇼츠도 봐야 하고, 남들에겐 절대 못 보여주는 일기도 써야 하는데 평생 안방 하나를 둘이 나눠 쓰면서 정말로 안 불편하냐는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에게 결혼은 어떤 로망 같은 것보다는 호기심의 영역이었다. 평생을 함께 한 가족들에게도 숨기고 싶은 사생활이 한가득인데, 그보다 훨씬 짧은 시간에 사랑이라는 것에 빠져 급격히 가까워진 누군가와 모든 일상을 공유한다는 게 정말 가능한 건지! 상상만으로도 불편한 이 상황을 많은 사람들이 인생의 당연한 절차처럼 행하고 있다니, 늘 대단하다고 느낀다. 


나는 어려서부터 일기를 썼다. 초등학생 때는 명백히 숙제라서 꾸역꾸역, 중고등학생 때는 세상을 향한 불만들로, 20대 때는 자책과 자기반성 등으로 가득 채운 일기들이다. 문득 걱정될 때가 있다. 어느 날 갑자기 예기치 못하게 내가 생을 마감하게 되면 이 일기장들은 누가 어떻게 처리해 주려나. 오글거리는 감성 글과 ‘데스노트’ 수준의 욕지거리들이 공존하는 이 미친 일기장을 누가 보면 어쩌나. 아무에게도 공유하고 싶지 않은 날 것의 생각들, 그런 것들이 다 있지 않은가. 그렇다고 또 버리지는 못하겠는 일기장 여러 권을 얼마 전 대청소하면서 발견했다. 그리고 다시 더 깊이, 숨겨뒀다.


어느 늦은 저녁에는 창 밖에서 한 아주머니가 혀가 꼬부라진 채 통화하는 소리를 들었다. 창밖을 내다보니 우리 엄마였다. 엄마는 주차장 한편에 쭈그려 앉아서 '누가바'를 먹으며 친구와 통화 중이었다. 내용은 기억이 안 나지만 엄마에게 꽤 속상한 날이었던 것 같다. 왜 집에 안 들어오고 밖에서 저러나 싶어 얼른 나가서 엄마를 데려왔다. 생각해 보면 엄마에게도 감추고 싶은 마음들이 있겠지. 아빠에게도 비상금만큼이나 들키고 싶지 않은 사생활이 있을 거다. 가장 사적인 공간인 집에서도 평생 ‘안방’ 하나만을 공유하며 살아온 엄마와 아빠는 대체 어느 방에 그런 것들을 숨겨놓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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