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계절이 바뀌었음을 알게 하는 몇 가지가 있는데, 그중 하나는 우리 집 냉장고다. 자두가 한가득이었다가, 복숭아였다가, 수박이었다가, 무화과였다가, 귤이었다가. 철마다 냉장고 속 메인 과일이 달라진다. 그뿐이 아니다. 봄에는 온갖 나물을 무치고, 복날에는 삼계탕을 끓이고, 동지에는 팥죽을 끓인다. 먹는 것에, 아니 먹이는 것에 진심인 엄마 덕분에 나는 마트에 가지 않아도 제철음식을 알고 계절을 안다.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렇게 무슨 때마다 맞춰서 음식을 챙겨 먹는 집이 많지 않더라. 그런데도 우리 가족들은 엄마 말마따나 ‘음식 귀한 줄 모르고’ 늘 남긴다. 음식 귀한 줄은 안다. 다만 엄마의 손이 너무 클 뿐이다.
보통의 다른 집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우리 집에는 냉장고가 4대 있다. 양문형 냉장고 1대, 김치냉장고 2대, 냉동고 1대. (그나마 빌트인 김치냉장고 1대가 고장이 난 덕에 4대로 줄어든 것이지 원래는 5대였다.) 냉장고가 이렇게 많으면 여유가 있을 법도 한데, 그렇지 않다. 무심코 냉동실 문을 열었다가 꽝꽝 언 무언가가 떨어져 발등이 아작 날 뻔한 적도 여러 번이다. 나에게 그것들은 음식보단 흉기에 가깝다. 그런데도 엄마는 냉장고에 가득 찬 음식들을 보면서 뿌듯한 얼굴로 말한다. “우리 집은 전쟁이 나도 몇 달은 먹고살 거다!” 전쟁 나면 전기고 뭐고 다 끊겨서 저거 다 버려야 될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먹을 게 없다며 매번 장을 보는 엄마에게서, 옷장에 옷이 한가득인데도 입을 옷이 없다고 하는 나를 본다.
엄마는 강원도 정선에서도 ‘예미’라고 불리는 산골 동네에서 나고 자랐다. 7남매 중에서도 둘째였는데, 열 식구가 한 집에서 밥 한 끼 하려면 어른 먼저, 아들 먼저 하다가 결국 엄마랑 이모들은 먹을 만한 반찬엔 손도 못 댔단다. 먹을 게 귀하기도 했으니 어쩌다 잔칫날이면 커다란 가마솥에 무를 잔뜩 썰고, 애기 주먹만 한 고기 한 덩어리를 넣어 한참을 끓였다고. 당연히 고기는 맛도 못 봤고, 고기 향만 나는 국을 먹으면서도 그날이 참 행복했다는 엄마. 어릴 때 먹고 싶은 거 마음껏 못 먹고 자란 게 서러웠는지 밥상 앞에서 자주 그때의 기억을 꺼낸다. 내 새끼는 그런 일 없게 음식만큼은 양껏, 건강하게 먹이고 싶은 게 엄마의 진심인 것이다.
그런데 나는 엄마와 아빠가 가끔은 줄 서는 맛집에도 가보고 새로운 음식도 맛봤으면 했다. 내가 외식하자고 하면 “비싼데 뭐 하러 나가서 먹냐” “집밥이 더 맛있다”라고 고집쟁이 할머니처럼 구는 엄마를 무시하고, 내가 맛있게 먹었던 식당을 기억해 뒀다가 엄마와 아빠를 데려가는 게 요즘 내 일상의 소소한 낙이다. 한 번은 태국 레스토랑에서 똠양꿍 쌀국수와 사이드 이것저것을 시켜 먹었는데 “다음 생일에 여기 또 오자”라고 말하는 엄마가 좀 귀여우면서도 애틋했다. 뭐 대단한 데라고 생일에 또 오자고 하는지 참나. 그런데 나도 다음에 엄마가 밥을 해주면 저렇게 이야기해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너무 맛있다, 다음에 또 해줘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