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기생충> 속 수많은 인상적인 장면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키워드는 ‘냄새’였다. 다른 건 다 감춰도 냄새만큼은 감출 수 없다고, 그래서 그 가족한테는 모두 똑같이 퀴퀴한 지하실 냄새가 난다고. 나는 지하실에 살지 않지만 왠지 그 씬들을 보면서 덜컹했다. 나에게선 어떤 냄새가 날까? 나도 인지하지 못하는 고유한 냄새가 있을까?
나는 서울에 있는 아파트에 살지만, 우리 집에서는 정겨운 시골집 냄새가 난다. 근데 이게 가끔 맡아야 정겨운 냄새지, 벽지마다 깊숙이 냄새가 배어 그 냄새 안에 갇힌 기분이 들기 시작하면 정말이지 집을 나오고 싶어 진다. 여하튼 냄새의 출처는 우리 엄마다. 집에서 해 먹는 음식을 중시하는 엄마는 때가 되면 장을 담그고, 액젓을 끓이고, 김장을 한다. 그중 가장 괴로운 순간은 액젓을 끓일 때다. 도대체 뭘 넣고 끓이는 건지, 이런 냄새가 나는 음식을 먹어도 정말 괜찮은 건지 걱정될 만큼 역한 냄새가 난다.
어릴 때는 세탁한 교복을 베란다에 널어두면 그 냄새들이 켜켜이 교복에 뱄다. 아침마다 자식새끼들 먹인다고 생선을 굽고 청국장을 끓일 때면 샤워를 하고 나왔는데도 머리카락 깊숙이 또 냄새가 뱄다. 그럼 나는 아침마다 짜증을 냈다. 더 정확히는 나만 짜증을 냈다. (아니 이 냄새가 나한테만 나는 거야? 아빠랑 동생은 후각이 고장났나? 늘 의아했다.) 그러니 엄마에게는 항상 나만 예민하고 유난인 딸이었던 것이다.
내가 짜증 낼 때마다 엄마는 이렇게 받아쳤다. “지가 제일 맛있게 먹으면서.” 정말 할 말이 없다. 맞는 말이다. 엄마가 담근 장은 맛이 좋고, 그 장으로 만든 음식이 맛없을 리가 없고, 내가 가장 괴로워하던 냄새의 주체인 액젓은 어떤 음식에든 넣었다 하면 깊은 맛을 냈다. 그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메뉴는 엄마가 담근 고추장과 된장을 섞어, 돼지고기를 숭덩 썰어 넣고, 애호박 대신 단호박을 넣어 푹 끓여낸 고추장찌개다. 며칠간 어디 멀리 다녀오거나, 출퇴근하는 것만으로도 바빠 제대로 된 한 끼도 못 먹고 다닐 때면 늘 생각나는 음식이다. 따끈한 밥에 고추장찌개, 그리고 엄마표 오이지까지 더해지면... 아 지금 당장 먹고 싶다.
집밥 귀한 줄 몰랐던 때에는 그런 엄마가 이해가 안 갔다. 왜 저리 해 먹는 것에 집착하실까. 그런데 이제는 나의 후각과 더불어 엄마에 대한 이해를 포기하기로 했다. 대신 지독한 냄새의 시간을 이겨내면 경험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맛을 선택했다.
어떤 그리움은 냄새로도 온다는데, 이 냄새들도 그리워질 날이 올까? 아주 천천히 왔으면 좋겠다. 그날이 꼭 와야 한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