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이던 어느 날, 쉬는 시간에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는데 단어 하나가 걸렸다. “어제 아웃백에 갔는데...” “아웃백이 어쩌고 저쩌고...” 대체 '아웃백'이 뭔지 묻고 싶었지만, 뭐든 모르는 게 부끄러운 중학생이었던 나는 속으로 질문을 삼켰다. 눈치로 봐서는 ‘아웃백’이 무슨 뜻인지 나만 못 알아들은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집에 와서 검색해 보고야 알았다. 그게 음식점 이름이었다는 것을.
‘패밀리 레스토랑’ 이라는데 우리 패밀리는 가본 적이 없는 곳이었다. 우리 가족의 외식 장소는 주로 고깃집이었다. 특히 반주를 좋아하는 부모님은 같은 돈이면 고기를 구워 먹지 ‘치킨텐더 샐러드’니 ‘투움바 파스타’니 하는 것을 먹을 이유가 없었다. 지금에야 그 고깃집들이 얼마나 맛집이었는지 알지, 한창 예민했던 여중생 입장에서는 고기 굽는 냄새도 싫고, 술 먹는 어른들도 싫고, 그냥 다 싫었다. 왜 우리 가족은 다른 패밀리들처럼 아웃백 같은 곳에 가지 않는 건지 괜히 부끄럽고 속상했다.
엄마와 아빠는 워낙 술을 좋아하셨고, 좋아하신다. 이렇게 쓰면 무슨 알코올 중독자에 주정뱅이들인가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지도 않다. 다만 몸도 경험도 작은 아이의 시선에서는 뭐든 크게 보이니까, 저녁이면 반주를 하고 꽤 자주 함께 술을 마시는 부모님이 싫었던 것 같다. 그때 그 시절의 감정이 남아서인지 지금도 나는 부모님과는 술을 잘 안 한다. 사실은 술을 꽤 좋아하는 편임에도 불구하고. (알코올 DNA는 못 속이나 보다.)
나중에 부부들의 사연을 다루는 방송 프로그램을 하면서 알게 된 사실은, 부부 싸움의 원인 중 ‘술’이 꽤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거였다. 그리고 대체로 둘 중에 한 사람만 술을 좋아하기 때문에 부부 싸움이 된다는 것도 여러 인터뷰를 통해 알게 됐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우리 부모님은 술 때문에 싸운 적이 많지 않았다. 각자 따로 마시고 오면 언성이 높아지기도 했는데, 대체로 같이 마시니까 그럴 일이 없는 것이다. 두 분이 모두 술을 좋아하는 게 다행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어리고 예민했던 나만 늘 화가 났던 것이다.
어릴 때는 '아웃백'에 가고 싶으면 부모님을 졸라야 했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다. 패밀리 레스토랑에 꼭 패밀리랑만 가란 법 있나. 나는 먹고 싶은 게 있으면 혼자서든 여럿이든 야무지게 챙겨 먹고 돌아다니는 성인이 되었고, 그렇게 가봤던 데 중에 좋았던 곳은 부모님을 데리고 또 방문하기도 한다. 가장 좋았던 나의 경험을 가족들에게도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다.
사람들은 대체로 본인이 가장 좋아하고, 잘 알고, 잘하기까지 하는 무언가가 있으면 그걸 사랑하는 사람에게 전하고 싶어 한단다. 그래서 엄마는 자꾸 우리만 보면 밥 타령을 하고, 아빠는 차로 데려다주겠다고 하고, 외식할 때마다 우릴 고깃집에 데려간 것이다. 어쩌면 그곳이 엄마, 아빠가 경험한 최고의 맛집이었던 것이다. 사랑하는 마음의 연장선이었던 것이다. 아주 먼 훗날이 돼서야 나는 그때의 고깃집을 이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