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N살이 되도록 운전을 못했다. 집도 일터도 서울에 있으니 차가 크게 필요 없기도 했지만, 겁도 났다. 핑계를 대보자면 겁의 근원은 아빠였다. 아빠는 우리 집에서 늘 운전하는 사람이었다. 어릴 때 아침 수영이 끝나고 등교를 할 때면 아빠 차에서 도시락을 까먹었다. 강남 8 학군 교육열에 떠밀려 온갖 학원에 다녀야 했을 적에도 아빠와 차가 필요했다. 다 큰 성인이 되어서는 자꾸 새벽에 일이 끝나는 나를 위해 아빠가 차를 끌고 왔다. 우리 집에서 유일하게 운전할 줄 아는 사람이었고, 아빠가 제일 잘하는 게 운전이었다.
과정은 하나도 기억이 안 나지만 내게도 면허는 있었다. 그러다 가끔 한 번씩 나는 왜 운전도 못 하지? 하는 좌절감에 빠져 운전을 배우겠다고 유난을 떨면 아빠는 표정부터 일그러졌다. 당장 필요한 것도 아닌데 위험하게 뭣 하러! 하는 식이었다.
주변에 마흔이 넘어 운전하게 된 선배가 있다. 선배네 집에서도 아버지가 유일한 운전자셨는데, 어느 날 아버지가 몸이 아파 병원을 가려고 하니 택시가 안 잡히더라는 거다. 그래서 아픈 아버지가 운전을 하고 선배는 조수석에 앉아야 했다. 그 순간 정말로 운전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남 이야기 같지 않았다. 다가올 내 미래 같았다.
그러다 얼마 전 중고차를 질렀다. 질렀다고 표현했지만 오랫동안 고민했다. 오랫동안이 되었던 이유는 좋은 차를 고르기 위함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용기를 주기 위함이었다. (제대로 안 알아보고 차를 샀다는 이야기다.) 아빠를 데려갔으면 좋았겠지만 그럼 또 망설여질 것 같아 가족들에게 말도 없이 사버렸다. 차를 지르고, 연수를 신청하고, 가보고 싶었던 카페 이곳저곳을 혼자 운전해서 다녀보고 있다. 부모님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지만, 필요에 따라 내 맘대로 지를 때도 있어야 하는 것 같다. 우리 부모님처럼 자식 걱정이 다채롭게 많으신 경우에는 더더욱!
그런데 그 걱정의 기반이 무신뢰였나 싶었던 것은 아빠에게 운전 연수를 부탁했을 때다. 계속 돈을 내며 연수를 받을 순 없었기에 아빠에게 몇 번 같이 타줄 수 있는지 부탁했는데, 거절당했다. 아빠는 내 차에 탈 자신이 없다고 했다. 더 서운한 일은, 그럼 주차 연수라도 시켜달라고 했다가 애처럼 울었다는 사실이다. 시작한 지 5분도 안 돼서 성질을 내는 아빠가 처음엔 웃겼는데, 문득 서러웠다. 나는 아빠가 공인 인증서니 뭐니 똑같은 거 10번씩 물어봐도 화 한번 안 냈는데, 진짜 너무하네! 라고 생각하면서 3N살 먹고 지하 주차장에서 오열을 했다. 아직까지는 아빠랑 나만 알고 있는 비밀이다. 서로 비밀로 하자고는 안 했지만, 암묵적인 비밀.
인간은 누구나 태어남과 동시에 많은 처음을 경험한다. 지금은 자연스러운 숨 쉬는 법, 가래를 뱉는 법, 혼자 양말을 신는 법, 심지어는 울고 웃는 감정들도 처음이 있었다. 나이가 들수록 처음인 게 줄어들어서인지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이 커진다.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를 보고 인생이란 일직선이 아니라 원의 형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처음을 지나가기 위해 알게 모르게 누군가의 도움을 받았을 인간은, 다시 또 다른 처음을 겪으며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아빠가 우릴 위해 기꺼이 운전기사가 되어줬듯이, 이제는 내가 해내야 할 순간들이 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마음으로 아주 오랜만에 '처음'에 도전했다. 물론 나를 위한 마음도 한가득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먼 미래에 다가올 처음 때문이었다. 아빠는 그것도 모르면서 정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