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tream Apr 17. 2024

나의 꿈

이렇게 살아도 되네 <11편>

 들꽃들과 앞산 뒷산의 숲 속에서 내 몸과 마음도 조금씩 치유되었다.

 미미하게나마 내가 원하는 것을 아는 순간들이 늘어가고 내 마음속의 형체가 없이 들끓던 마그마가 조금씩 어렴풋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들꽃을 알아가며 햇빛 속에 쪼그리고 앉아 풀꽃을 그리는 게 좋았다. 아침 산책하다가 새로 핀 달맞이꽃을 발견하면 꽃잎을 오므리는 시간이 되기 전에 그리려고 색연필과 노트를 가지러 달려가기도 했다. 

 어렸을 때 즐겨 치던 피아노도 다시 칠 마음이 났다. 몇 차례 지인들을 초대해 사랑방 파티를 열었는데, 자신이 먹을 조리하지 않아도 되는 음식과 발표 거리를 한 가지씩 가지고 오는 게 준비물이었다. 나는 한 번도 쳐보지 않은 쇼팽의 녹턴 한 곡을 치는 것으로 목표를 정하고 날마다 연습했다. 피아노를 치는 게 오랜만이기도 했지만 내 수준으로는 좀 어려운 곡이어서 한음한음 자리를 찾아가며 더듬더듬 연습했다. 석 달 정도 연습하니 외우지는 못해도 막히지 않고 느낌을 따라 칠 수 있는 정도는 되었다. 사랑방 파티에서 연주했을 때 엄마아빠 따라온 어린 조카도 가만히 빠져서 들을 정도로 좋았다고 동생이 말해주었다.    

  

 그렇지만, 내 마음속 마그마는 어디로 그 에너지를 향하고 있는 것일까. 나는 여전히 알 수 없었고 가끔은 답답한 마음에 꺼이꺼이 크게 소리 내어 울기도 했다.

 그러던 중 2004년 봄, 지금은 자리를 옮겼지만, 대구 상동의 작은 문화 공간 ‘공간울림’ 소식지에 문예학당 프로그램이 실렸다. 뭐가 있을까 자세히 살펴보니 ‘작곡 강좌’가 있었다. 

 ‘작곡이라고?’ 나는 눈이 번쩍 뜨였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노래는 늘 변함없는 내 친구였다. 길을 걸을 때도 노래를 부르고 밥 먹으면서도 노래를 흥얼거리다가 할머니한테 야단맞곤 했다. 내가 정말 부르고 싶은 노래를 만들고 싶다는 소망을 가져보기도 했고 대학 시절에는 작곡과로 전과하는 것을 깊이 고민한 적도 있었던 터였다. 이제야말로 내가 음악을 할 기회가 온 것인가.

 나는 당장 등록 신청을 했다. 신청자가 5인 이상이 되지 않으면 폐강된다고 해서 신청해 놓고 며칠 조마조마했다. 일반인들 중에 작곡 강좌를 들을 사람이 몇이나 있을지. 그러던 며칠 후 전화가 왔다. 공간울림에서 작곡 강좌를 여신 작곡가 이상만 선생님이셨다. 왜 작곡을 배우려고 하는지 물으셨다. 뭐라고 했던가? 기억나지 않지만, 강좌를 들으러 오라고 하셨다. 

 운전 면허증은 있지만 무서워서 아직 운전을 못하고 있던 나는 자전거를 타고 풍각 버스터미널까지 15분, 시외버스를 타고 1시간 달려 대구 상동 공간울림으로 작곡을 배우러 갔다. 첫 수업 때 가보니 수강생은 달랑 나 하나뿐이었다. 원래는 폐강했어야 할 강좌를 나를 위해 열어주신 거였다!  

 매주 한 번씩 둥지를 나와 자전거를 타고 버스를 타고 작곡을 배우러 가는 길은 설레고 가슴 벅찬 시간이었다. 신기하고 새로운 길이 열리는. 

 이거면 될 거 같았다. 내 마음과 소질을 모두 담아 나를 표현할 수 있는 일!     


 하지만, 이래서 공부에 때가 있다고 하는 건가.

 몇 년 정도 전적으로 매달려 작곡공부에만 푹 빠져있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아이를 돌보고 집안일도 해야 하고. 남편이 초상화를 그만두고 공방을 해보기로 결정한 과도기여서 생활비를 벌기 위한 아르바이트도 해야 했다. 차비와 소정의 렛슨비 마저 부담되었다. 결국, 이론과 실기를 겸한 작곡수업은  2년 정도만에 끝났다. 

  공부를 더 깊이 하지는 못했지만 나의 성실성과 재능을 인정해 주신 선생님을 통해 음악활동을 할 수 있었다. 대구에서 활동하는 여성 밴드 '미스티'의 멤버가 되어 1년 정도 연주활동을 하면서 전자악기의 매력을 알게 되고 밴드 음악이라는 새로운 음악세계를 맛보았다. 아쉽게도 여러 사정으로 밴드가 해체된 뒤에는 일상의 예술을 꿈꾸는 선생님을 중심으로 모인 앙상블 팀 '아름무리'의 멤버로 몇 년 동안 노래와 멜로디언 연주를 했다. 음악을 같이 할 수 있는 동료가 있다는 건 참 행복하고 소중한 경험이었다.  내 깊은 허기를 넘치게 채워주는 시간이었다.  

 내 작곡은, 매체를 통해 만날 수 있는 너무나 뛰어난 음악들과 비교도 할 수 없는, 어린아이 같이 소박한 수준이지만, 내 안에 이는 흐름을 감지하고, 내 삶을 담는 하나의 소중한 표현 방법이 되었다. 

 내 안의 마그마는 격하지 않게 천천히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작가의 이전글 아이와 함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