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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ream May 02. 2024

현리리 토요학교

이렇게 살아도 되네 <14편>

    

 80여 가구가 사는 현리리 마을에는 귀촌할 때 만 서른 살이었던 나와 비슷한 또래인 가정은 딱 한 집뿐이었다. 엄마들도 아이들도 마을에 유일한 친구가 되었다. 햇살 따스한 이른 봄날에는 아이들을 데리고 함께 쑥이나 냉이를 캐러 다녔다. 하지만 농사철에 친구는 정신없이 바빴다. 복숭아 수확 철이면 친구네 아이들 셋이 예쁘고 탐스런 복숭아 한 봉지를 받아 들고 거의 날마다 우리 집으로 놀러 왔다. 저 멀리서부터 마을 끝 쪽에 있는 우리 집까지 막내가 타는 세발자전거소리 요란하게 달그락거리며. 아이들은 오후 내내 해 질 녘까지 역할놀이도 하고 그림도 그리고, 싱싱 카와 인라인스케이트를 타고 온 동네를 누비며 놀았다.   

  

 어느 날, 명절 즈음이었을 것이다. 친구네 시어머니 댁 대문 앞을 지나다가 너른 마당 저쪽 편 뜨락에 네 살배기 막둥이가 보였다. 아이는 어른들 앞에서 몸도 감싸지 못하는 짧은 팔다리로 이효리의 섹시 춤을 추며 혀도 잘 돌아가지 않는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뜻도 모르는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이제 막 아기 티를 벗어난 네 살 아이가.  

 시골에서 문화적인 경험이라면 티브이가 전부고 어른들은 농사에 바빠 아이들에게 다양한 경험을 제공할 여력이 없으니 이렇게 어린아이조차도 아이다운 노래를 부르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동요를 부르며 자란 내 어린 시절을 생각하며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대중가요는 아이들의 기쁨과 슬픔과 외로움의 노래가 아니다. 아이들에게도 그때그때 자기 기분에 맞게 마음을 풀어놓을 수 있는 노래 보따리가 필요하다. 이런 생각에 노래교실을 열기로 했다.  대상은 우리 마을 아이들. 

 마을 끝자락 ‘사랑의 집’ 에도 목사님의 보살핌을 받으며 지내고 있는 아이들이 몇 명 있었다. 친구와 목사님에게 양해를 구하고 토요일 오후 2시에 우리 집에서 모이기로 했다. 이름은 ‘현리리토요학교’로 정했다. 


 토요일 오후 2시가 가까워지면 대문 밖을 내다보며 조금은 초조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오늘도 아이들이 와줄까? 그러다가 조용한 시골길 이 쪽 저 쪽에서 도란도란 아이들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면 마음이 놓였다.

 그날의 노래를 배우는 건 제일 중요한 일정. 

 ‘뒷산 늙은 호랑이, 나뭇잎 배, 무섬이, 꽃은 참 예쁘다, 안녕.......’ 

 내가 좋아했던 노래들, 새로 알게 된 예쁜 동요들을 한 편씩 가르쳐주었다.   가사를 크게 써서 펼쳐 놓고 같이 읽어보고 내가 피아노를 치며 한 소절씩 따라 부르도록 했다. 새로운 노래를 가르치기는 생각보다 쉽지 않았지만 아이들은 열심히 따라와 주었다. 

 노래를 부르고 나면 그날 준비한 일정에 따라 시도 쓰고 창작 이야기도 써서 아이들이 돌아가며 발표했다. 마음을 잘 담은 시에 감동하기도 하고, 기발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으며 떼굴떼굴 구를 정도로 웃음이 터지기도 했다. 종종 남편이 합세해서 마당의 돌멩이나 나뭇가지로 미술놀이도 하고 대나무를 잘라 대나무 카주를 만들기도 했다. 

 어떨 때는 우리 이야기를 들은 지인 찬스로 과학, 조각, 도자기, 마임, 저글링, 심지어 무술까지, 다양한 장르의 전문가들이 무료로 현리리토요학교의 일일 선생님이 되어주었다. 

 노래를 배우고 창작놀이를 하고 나면 준비해 둔 고구마나 가래떡 같은 간식을 챙겨 들고 산책을 갔다. 아이들 의견을 따라 여름 냇가에 가서 물고기도 잡고 한겨울 숲 속 오솔길을 가다가 눈 속에 언 찔깃한 고욤 열매를 따먹기도 했다. 동네 앞 가파른 낚시등산도 서로 잡아주고 밀어주며 함께 넘었다.

 횟수를 거듭하면서 이웃마을 아이들까지 친구 따라 우르르 몰려오는 날이면 우리 집 마당은 아이들로 가득 찼다. 어린아이부터 큰 아이들까지 편을 나누어 닭싸움도 하며 시끌벅적 활기찬 옛 시골마을의 모습이 재현되었다.

 한 번은 아이 둘이 싸워서 작은 아이가 울고 큰 아이는 씩씩거리며 성이 났다. 아이들을 어떻게 화해시킬지 몰라 쩔쩔매다가 우선 우는 아이만 달래 놓고 큰 아이는 모른 척하며 프로그램을 계속하고 있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니 큰 아이가 슬그머니 내 곁으로 다가왔다.

  “한 발 두 발 해요. ” 

 하며 불쑥 제안하는 것이었다. 모르는 척 반가움을 감추고 집 앞 농로에 아이들을 데리고 나와 한 발 두 발 게임을 했다. 한 겨울, 얼굴이 발개지도록 놀이에 신이 난 아이들은 언제 싸웠냐는 듯 뒤섞여 추운 줄도 모르고 어두컴컴해질 때까지 끝도 없이 놀았다.  


 시골 풍경 속에서 아이들의 모습은 어디에서 보아도 그림처럼 예뻤다. 그 속에서 외동인 우리 딸도 자랐다. 

 현리리토요학교는 아이들이 자라고 우리도 바빠지면서 점차 그만 열게 되었지만 그 시간을 펼치면 한 권의 동화책처럼 소중한 이야기로 남아있다. 그때 그 아이들에게도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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