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다리도 두들겨 봐야지
며칠 전부터 두통이 생겼다.
왼쪽 머리가 욱신욱신거리면서 계속 기분이 나쁘게 하더니 눈도 아픈 거 같고, 소화도 안 되는 것 같았다.
가만히 누워있다 보니 속이 메슥거려서 결국 먹은 것들을 다 화장실에 가서 올리고 빈 속이 쓰려서 두유 한잔을 데워 마셨다.
순간 덜컥 불안함이 밀려왔다.
바로 핸드폰을 켜고 검색창에 익숙한 단어들을 검색했다.
“뇌전이 증상”
그냥 두통일 뿐인데, 소화가 좀 안 되는 것뿐인데.
일반적으로는 타이레놀 하나 먹지 뭐. 소화제 하나 먹을까? 이러고 말 수 있는데 그렇게 지나치기가 너무 어렵다.
머리가 아프면 뇌전이를 검색한다.
골반이 아프면 뼈전이를 검색한다.
몸이 많이 피곤한 것 같으면 간전이를 의심한다.
기침이 나면 폐전이를 의심한다.
의심 또 의심
증상들을 찾아보다가 나랑 비슷한 증상을 하나 발견이라도 하면 또 걱정이 한가득이다.
MRI를 찍어봐야 할까? 다음 달 예약이 있는데 미리 가서 좀 예약을 당겨달라고 해야 할까?
머리가 아프기 시작하더니 눈동자도 좀 아픈 거 같고,
두통이 오니 소화도 잘 되지 않았다.
어질어질 뱃멀미 하는 기분이 좀 드니 항암 하던 때가 기억이 났다.
항암 이전에는 이런 증상을 입덧할 때처럼 머리가 어지럽네? 했었는데.
이젠 조금 어질어질하고 구역감이 느껴지곤 하면 항암 할 때 이런 증상 한 10배쯤 됐었었는데,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어깨가 좀 아픈 증상이 심한 거 같아서 차례차례 병원을 방문해 보기로 했다.
우선 어깨 아픈 증상에 늘 가는 통증의학과를 방문했다. 익숙하게 진료실을 들어가니 의사가 또 익숙한 표정으로 맞이했다.
"어깨가 아파서 왔어요. 두통도 좀 있고요. 소화도 잘 안 되는 거 같아요."
"올 때가 됐네요. 그죠?"
"네?"
"이전에 방문하고 한동안 안 왔었는데 요즘 또 일을 많이 했어요?"
"아. 일은 안 했는데요."
"그럼. 요즘 어깨 쓰는 일 많이 했어요?"
"아... 그게. 요즘 뜨개질을 좀 했어요."
"그러니까 그럴 수 있어요."
나는 뇌전이를 검색하고 걱정했는데.
내 어깨와 두통과 소화불량의 원인이 뜨개질이었다니.
하긴. 어쨌든 뇌 MRI를 찍어본 것도 아니니까 어디까지나 추정이다.
"경추성 두통인 거 같은데 뜨개질을 좀 줄이고 잠을 좀 많이 자요. 똑바른 자세로 잠도 잘 자야 하고 스트레칭도 좀 해주고. 약 먹고 물리치료 좀 받죠."
워낙 자주 가는 통증의학과 선생님이라 암 진단 이전에도 내 평소 자세가 잘못됐었음을 알고 있긴 하다.
나는 물리치료를 받고 근육이완제와 진통제를 처방받아서 병원을 나왔다. 나오면서 정말 의사 선생님이 말한 대로 경추성 두통이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 잘못된 자세 때문에 머리가 아픈 거면 진짜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모든 어깨 쓰는 일을 멈추고 뜨개질도 안 하고 최대한 잠을 많이 잤다.
그리고 두통이 사라졌다. 눈이 아픈 증상도 없어지고 며칠 신경 쓰면서 소식을 했더니 소화불량도 괜찮아졌다.
증상이 사라지면서 걱정도 없어졌다.
이렇게 걱정했던 증상들이 없어지면 그래, 뇌전이는 아니겠지.
그래도 이번 정기검진에서는 종양내과 쌤에게 뇌 MRI를 한번 찍어보고 싶다고 얘기해 볼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진짜 내 머릿속에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면 불안이 좀 멈출 것 같은 느낌.
이런 의심은 가슴에 만져지던 딱딱한 무언가가 있던 날 이후 생겼다.
내 가슴에 무언가가 만져지던 그 순간에 나는 별거 아니겠지. 설마 이게 암 이기나 하겠어? 했었다. 하지만 그 가벼운 생각은 진짜 암이 되는 순간 바뀌었다.
그리고 처음 듣는 "암입니다."라는 말과 재발 혹은 전이가 되어 "암입니다."소리를 듣는 건 천지차이라는 걸 안다. 그 치료과정이 어떤지 알기 때문에 더 무섭다는 것,
며칠 두통이 있던 사이 나는 천당과 지옥을 또 오가며 속상해했었다.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아직 그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버렸다.
"머리 아픈 건 좀 괜찮아?"
"응. 안 아파. 나 의사 선생님 말대로 뜨개질을 많이 해서 경추성 두통이 왔던 건가 봐."
"그래. 다행이네."
"근데 아마도 다음번에도 두통이 오면 난 뇌전이일까 봐 무서워하겠지? 그렇게 의심하고 걱정하는 게 속상하기도 해."
"그런 일이 많이 있는 건 아니잖아."
"사실은 무서웠어. 하루아침에 내 일상이 또 사라질까 봐."
아! 근데 그런 건 자신 있다. 아프면 바로바로 병원에 가서 온몸 구석구석에서 오는 모든 아픈 신호들을 점검받는 자신!
괜찮을 거야. 별거 아닐 거야. 하는 생각 같은 건 이젠 없다. 겁나지만 그렇다고 무서워만 하기에는 아직 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기 때문에!
- 당분간 뜨개질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