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드라마 예고편에서
이제 막 시작을 앞둔 어느 드라마 예고편을 무심히 보고 있었는데 가슴을 울리는 말이 들렸다.
진짜 일상적인 말인데 그 말을 예전에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잠시 생각이 멍해졌다.
극 중의 노비 주인공이 하는 말.
"제 꿈은 늙어 죽는 것입니다.
맞아 죽거나 굶어 죽지 않고 곱게 늙어 죽는 것이요."
누군가에겐 아주 평범한 그 늙어 죽는다는 말이, 그 주인공인 노비에게는 꿈이고 소원이 될 수 있는 말이었겠다는 생각.
나도 그랬다. 암에 걸렸다는 얘길 들었을 때 치료를 하면서 아주 일상적인 풍경에 마음이 먹먹해질 때가 있었다. 나이 든 노인의 모습을 보면 그 평범한 일상 같은 풍경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란 것을 알았을 때다.
나이는 시간이 지나면 누구나 먹는 것, 누구나 늙는다는 것은 정말 가장 쉽고 평범한 일이라고 생각이 들겠지. 그런데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가 있었다. 어쩌면 늙는다는 것, 나이 든 노인이 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버렸다는 것.
"나는 늙는 게 너무 자연스러운 것인 줄 알았어."
"늙는 건 자연스러운 거지."
"근데. 늙어 죽는 게 소원인 때가 있었어."
"응?"
"늙어 죽는 게 쉬운 일은 아닐 거란 생각이 든 때가 있었어. 갑자기 사고가 나서 죽는 게 아니라, 아파서 어쩔 수 없이 죽는 게 아니라 늙어서 수명을 다해서 죽는 거 말이야. 그건 쉬운 게 아니더라고."
"......."
"나 예전에 병원에 다니면서 항암하고 그럴 때, 나는 노인이 되는 게 소원일 때가 있었어."
"......"
"노인이 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란 걸 그때 처음 알았어."
오늘 남편과 점심을 먹으며 나눈 대화였다.
내 말에 처음엔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를 하나? 하고 바라보던 남편은 가만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머리가 새하얀 노인이 되어 이렇게 일상처럼 점심을 먹는 일이 아주 먼 미래의 일이라면, 그 일상 같은 하루가 참 쉬운 일이 아니란 것을 우리는 가만히 깨달았다.
"우리 같이 늙어 죽자."
"그래."
"같이 밥도 먹고 산책도 하고 그렇게 늙어 죽자. 아프지 말고."
괜히 고개를 끄덕이다가 울컥했다.
늙어 죽어야지. 그게 오늘 우리의 소원이 되었다.
물론, 아프지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