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고향은 황해도다. 엄마는 6.25 전쟁을 직접 겪었다. 1.4. 후퇴 때 남쪽으로 내려와 연고도 없는 인천에 자리 잡았다고 한다. 먹을 게 풍족하지 않던 시절, 그나마 인천은 해안 도시라 생선이 흔했다. 다만 오래 두고 먹으려면 생선을 꾸덕꾸덕해질 때까지 말려야 했다. 그 당시에는 집집마다 지붕에 생선을 널어놓고 햇볕에 자연 건조를 시키곤 했다. 오남매의 막내인 엄마의 역할은 지붕 위에 쪼그리고 앉아 손으로는 훠이훠이 파리를 쫓아내고 고양이는 소리 질러 근처에도 못 오게 생선을 지키는 일이었다. 귀찮은 파리랑 고양이, 그리고 더운 공기와 뙤약볕 밖에는 볼 게 없어 심심해지면 엄마는 생선 눈알을 하나씩 하나씩 파먹었다. 널어놓은 쪽의 눈알이 다 없어지면 생선을 하나씩 뒤집어서 반대쪽의 눈알을 집어먹었다.
언니와 오빠는 학교에 가서 놀아줄 사람 하나 없으니 외할머니는 심심해하는 막내딸에게 집안일과 놀이의 중간쯤 되는 생선말리기의 임무를 주었던 거 아닐까 싶다. 게다가 먹을 것이 부족하여 간식조차 꿈꿀 수 없던 시절, 동글동글해서 사탕이랑 비슷하게 생긴 짭짤한 생선 눈알은 영양가 높은 유일한 간식이었을 것이다.
나는 생선을 좋아하지 않는다. 생선을 굽고 설거지 할 때 나는 비린내를 먹을 때의 고소함으로 당해낼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의 둘째 딸은 생선을 좋아했다. 내가 챙겨주질 않으니 외가에 갈 때마다 외할머니가 구워준 조기는 둘째 딸에게 별미였나 보다. 아이는 식탁 위에 올라 온 구운 생선을 보면 흰 뱃살이 아니라 눈알부터 집어 먹었다. 그러고는 생선을 뒤집어 달라고 해서 반대쪽 눈알도 먹었다. 그러고 나면 비로소 흰 살을 먹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나의 엄마는 어릴 적 지붕에서 생선 말리던 자신의 유년 기억을 말씀하셨다. 어린 손녀와 자신의 닮은 점을 그렇게 찾았다. 어린 둘째 딸의 모습에서 지붕 위에 혼자 덩그러니 쪼그리고 앉아 가족의 저녁 반찬거리를 지키고 있던 엄마의 유년 시절을 보았다. 나의 엄마와 나의 딸이 가진 닮은 점이 긴 시간의 공백에도 불구하고 가능하다는 것이 신기했다.
이제 아이는 생선의 흰 살만 먹는다. 더 이상 눈알 따윈 먹지 않는다. 심지어 어릴 적 눈알부터 먹었다는 사실도 잊어버렸다. 하지만 유년 시절로부터 7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엄마는 생선 말리던 것을 생생히 기억하고 종종 말씀하신다. 기억이라는 건 지나온 시간의 양이랑 상관없이 생생하게 남기도 하고 희미해지기도 하는가 보다. 이제 곧 팔십이 다 되어가는 엄마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한데, 아직 스무 살도 안 된 둘째 딸의 기억은 이미 사라져 버렸으니 말이다.
기억이라는 게 항상 온 순서대로 사라지는 건 아니라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누군가에게 어떤 기억은 좀 더 많이 남고, 좀 더 생생하고, 좀 더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었으면 좋겠다. 엄마의 기억처럼 말이다. 엄마가 자신의 유년 시절을 계속 기억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엄마가 자신의 유년 시절을 계속 나에게, 그리고 손녀들에게 이야기해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