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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양 May 28. 2023

유병 100세 시대

요양보호사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아직 30대인 나에게 아주 먼 이야기 같지만 요즘 공부를 하면서 또 한 번 느꼈다. 노후라는 것은 준비를 한다고 내 마음처럼 잘 되지 않는다. 열심히 돈을 모아 실버타운을 간다고 해도 건강하게 늙어갈 거라는 보장은 누구에게도 존재하지 않는다. 한때 잘 나가는 삶을 살았던 사람들도 모두 나이가 들면 아프다. 100세 시대가 도래했지만 그만큼 아픈 기간도 길어진다는 유병 100세 시대를 우리는 어떻게 대비해야 할까..


적은 인생이지만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게 인생이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그냥 남들처럼 평범한 게 소원이었던 나는 남들과 다른 길을 가고 있는 것만 봐도 인생이 얼마나 다이내믹한지 알 수 있다. 노후도 마찬가지이다. 돈을 많이 모아놓는다고 행복한 노년을 보낼 수 있을까? 막상 병들고 아프면 누구나 똑같을 것이다. 그때가 되면 집이 무슨 소용이고, 차가 무슨 소용일까. 물론 병원비와 약값정도는 편히 낼 수 있는 주머니 사정이라면 좀 덜 비참하겠지만 결국 우리는 모두 요양병원행이다.


학원 수강생들의 대부분은 50대 이상이기 때문에 여러 가지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나눈다. 누군가를 보살피겠다며 학원에 들어온 수강생들이지만 모두들 자식들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는 않다며 당연히 노후에는 요양병원에 들어가는 거라며 말씀들을 하신다. 안 그래도 살기 팍팍한 세상에서 자식들의 짐이 되기는 싫다고 말씀하신다. 자식이 없는 나는 당연한 이야기지만 듣다 보면 참 씁쓸한 이야기로 들린다. 대학까지 보내놓고 결혼 후에는 손주, 손녀를 돌봐주다가 결국 죽을 때도 자식의 짐을 덜어주려는 부모의 마음을 그 자식들은 알기나 할까.


일찌감치 엄마를 통해 노후를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 보고 있는 나는 요즘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아프고 병드는 것도 서러운 나이에 자신의 거처조차 마음대로 정할 수 없는 처지라니 참 슬픈 현실이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엄마가 혼자되시면서 딸들 집과 가까운 곳으로 이사오기를 권했었다. 하지만 엄마는 굳이 굳이 지금의 집이라도 남겨놓고 싶다며 혼자가 편하다며 거부하셨다. 그리고 몇십 년을 살아온 익숙한 동네사람들과 친구들을 포기하고 싶지 않아 하셨다. 처음에는 외로움을 많이 타는 엄마여서 참 이해가 안 됐다. 나이가 들면 자식 곁이 아무래도 좋은 게 아닌가 싶어 고집 쌘 엄마라며 우리는 한숨을 쉬었었다. 하지만 학원 언니들의 이야기는 달랐다. 아무리 자식이 잘해준다고 해도 내 집만큼 편한 곳은 없고 나이대가 비슷한 친구들과의 이야기만큼 즐거운 것이 없다고 하셨다. 그리고 오히려 나이가 들어 동네를 옮기면 다시 사람을 사귀는 게 쉽지 않다며 오히려 매일 갈 곳이 있는 지금이 즐거우실 거라고 하셨다.


요양보호사의 업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모든 일을 대신해 주는 것이 아니라 대상자가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을 격려하고 독려하는 일이다. 할 수 있는 일조차 점점 하지 않게 되면 다양한 기능이 떨어지고 자존감도 떨어져 우울증이 쉽게 온다고 한다. 되도록이면 사소한 것이라 할지라도 최대한 스스로 하면서 의존하지 않는 독립적인 삶을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집에 혼자 있는 게 무섭다고 말하던 엄마였는데 지금 생각하면 오히려 잘한 선택이었다. 괜히 낯선 동네로 이사 와서 혼자 갈 곳도 없이 멍하니 하루하루를 보내면 더 힘들었을 것이다. 다행히도 몇십 년 동안 봐온 오래된 아파트주민들이 엄마를 걱정해 주고 관심을 가져주신다. 게다가 최근 이사 온 옆집에는 유치원을 다니는 아이들이 있는데 '우리 할머니'라 부르며 엄마를 엄청 잘 따라줘 고맙다. 그리고 엄마의 노후 동지인 경로당 친구들은 엄마의 활력소가 되어주고 있다. 그리고 딸들보다 전화를 자주 해주는 독거노인을 지원해 주는 요양보호사님이 매일 전화를 주시고 일주일에 한 번씩 찾아가 주시니 걱정이 덜 된다. 자식들이 채워주지 못하는 것들을 여러 사람이 함께 채워주시니 감사할 따름이다. 


나는 긴 난임생활을 하면서 사람들과 어울리는 법을 잊고 살았다. 나의 자격지심이 가져온 일이겠지만 사람들과 굳이 가깝게 지낼 필요가 있냐며 스스로를 가뒀었다. 그런데 요즘 학원을 다니면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보니 사람들과 어울리는 기쁨이 무엇인지 다시 알게 되었다. 편견 없이 사람을 봐주는 따뜻한 사람들과 어울리다 보니 나도 좀 더 밝아진 느낌이다. 지금 보면 우리 엄마의 노년은 꽤 괜찮은 것 같다. 


정말 다행히도 늦둥이 막내딸이 걱정돼서 아직 죽을 수 없다는 엄마는 요즘도 매일같이 동네 산책 겸 운동을 하시고 한 달에 보름은 경로당 청소를 하시면서 매일매일 경로당에 출근도장을 찍고 계신다. 해가 길어진 요즘은 꽤 늦은 시간까지 친구들과 수다를 떨다 집에 들어가시고 밤에는 혼자 치매예방 색칠공부를 하며 하루하루를 잘 버텨주고 계신다. 부디 아프지 않고 오래오래 나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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