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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양 May 10. 2023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다

요양보호사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엄마가 예전부터 했던 말이 있다. 집집마다 말 못 할 사정은 하나씩 있는 법이라고..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해 보이지만 속속들이 들여다보면 슬픈 사연 하나쯤 없는 사람이 없다.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려는 사람들 연령대가 이제는 많이 낮아졌다고 한다. 우리 학원에도 60 대생부터 80 대생까지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다. 여성의 비율이 월등히 높지만 남성도 4명이나 된다. 


어떤 사람은 자식이 아파서 어떤 사람은 부모님이 아파서 어떤 사람은 배우자를 위해..

저마다의 목표를 가지고 모인 우리 반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최소한 나쁜 사람은 없다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를 위해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요즘 보기 힘든 사람들이다. 저마다의 사정으로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준비하고 있는 예비 요양보호사들이다. 내 앞자리에 앉은 귀여운 이모는 시부모님이 모두 치매가 시작된 것 같다며 장남 며느리인 자신이 책임져야 하지 않겠냐며 자격증을 따러오셨고, 최고령 할머니는 요즘은 100세 시대라며 65세가 넘은 나이에 취직을 하려고 자격증 공부를 하러 오셨다. 나는 친정엄마를 위해 공부를 하고 있다. 우리는 자신이 아닌 누군가를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학원과 연계된 재가센터 원장님은 60이 넘은 나이에 요양보호사 자격증과 사회복지사 자격증 등 총 17개의 자격증을 취득하셨는데 막상 필드에 나가 취직을 하려고 하니 요양을 받으셔야 할 나이지 요양을 하실 나이가 아니라며 핀잔을 받았다고 한다. 필드에 나가보니 뉴스에서만 보던 일들을 접하면서 놀라기도 했다고 한다. 한 강사님은 현직 요양보호사로 일하고 계신데 별의 별일이 다 있다고 한다. 성희롱을 하는 할아버지부터 욕을 듣는 건 아주 당연한 일이라고 말씀하시며 우리에게 겁을 주는데 정작 본인은 아주 해맑게 웃으면서 "치매는 병이기 때문에 병 때문에 발생하는 일에 일희일비하실 필요 전혀 없어요. 우리도 모두 언젠가 늙고 병들잖아요."라고 말씀하셨다. 그렇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 모두 노인이 된다. 지금은 먼 이야기라 생각 들지 몰라도 우리도 언젠가 요양보호사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순간이 올 것이다. 그 대신 우리들은 한 발 앞서 그 길에 발을 들였으니 미리 잘 대비할 수 있을 것이다.


내년에 팔순인 우리 엄마는 오랫동안 일을 하셔서인지 고용보험센터라던지 일자리센터 등과 아주 친밀하다. 직장에서 은퇴를 하고도 국가에서 노인들을 대상으로 일자리를 마련해 주는 일들을 자식들 몰래 많이 하셨다. 70이 다 된 나이에 독거노인 말동무를 해주는 일부터 경로당 청소일까지 하면서 자신의 노후를 자식에게 손 벌리지 않고 자립적으로 살아가는 신식엄마이다. 덕분에 나는 엄마를 통해 실버일자리센터가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고 독거노인이 우리 엄마를 찾아오는 요양보호사님을 통해 사회복지사와 생활지원사라는 것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생각보다 우리나라는 노인을 위해 다양한 복지와 제도가 마련되어 있어 든든하다.


자식이 없어서 노후가 불안하다는 것은 옛말이다. 요즘은 나라에서 다 알아준다며 엄마는 자식이 없는 나를 안심시켜 준다. 자식이 있다고 해도 매일 찾아오는 것도 아니고 자기들 밥벌이하고 살기도 빠듯한데 병원비에 요양비까지 받다 보면 구박덩어리가 되는 것은 당연지사이다. 나이가 들면 돈이 최고라 하는 우리 엄마 말이 정말 맞을지 모른다. 돈까지 없다면 자식들이 거들떠도 안 보는 게 실제로 비일비재하다. 나는 어렸을 때는 또래친구들의 부모님과 달리 많이 늙은 부모님이 창피했었다. 하지만 덕분에 지금은 한 치 앞이 아니라 두치~세치 앞정도를 미리 보고 산다. 또래 친구들보다 미리 인생을 알아가면서 배우는 게 참 많다. 하지만 늘 처음이라 낯설고 막막하기도 하다. 그러나 어쩌면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고 나의 먼 미래를 잘 대비할 수 있을 것이다.




공부를 시작한 지 두 주쯤 지나니 다들 이제는 친해졌다. 그리고 여전히 아침일찍 일어나 고양이케어를 하고 점심도시락을 싸서 마을버스를 타러 나간다. 11년동안 직장생활을 안했던 나는 오랜만에 길을 나서는게 참 기분이 좋다.  점심을 먹고나면 가기 싫은 산책을 할머니와 이모 덕분에 등 떠밀려 가게 된다. 덕분에 광합성을 하면서 계절이야기, 인생이야기 등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지낸다.  부지런한 하루를 보내고 집에 돌아오면 녹초가 되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다.


얼마전 남편에게 요즘 집에 돌아오면 집안일 할 시간도 없어서 미안하다며 역시 내가 그냥 집에 있는게 낫겠지?라고 쓸쩍 떠봤더니 남편이 "응. 나야 집에 있는게 좋지"라고 하면서 덧붙인 말이 "근데 자기는 막상 나가니까 피곤하다고는 하지만 수다도 늘고 재미있어 하는 것 같아. 역시 자기는 나가서 일해야하나봐"라며 나를 꿰뚫어보는 소리를 했다. 집에 있는게 좋은 집순이라고 여기고 살았지만, 사실 나는 직장 생활의 성취감이 참 좋았고 사람들과 수다떠는 것도 재미있어하는 편이다. 하기 싫은 일, 스트레스 받는 일은 안 하면서 사는 게 제일 아니냐고 말하는 나였지만, 가끔 이렇게 하기 싫은 일도 하면서 사는 게 나쁘지는 않은 것 같다. 그룹생활을 싫어하는 편이지만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얘기를 듣는 게 예민했던 20대에 받아들였던 것과는 달리 지금은 모든게 재미있게 느껴진다. 


"내 인생은 왜이럴까"라며 자책하고 원망했던 시기도 있었다. 하지만 조금의 위안이라면 나보다 더 힘든 상황속에서도 꿋꿋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이다. 나약하기 짝이 없던 나는 불평 불만만 하는 철부지였다. 온실속 화초처럼 자라 작은 바람에도 흔들리는 하찮은 존재였다. 찰리채플린의 말처럼 인생은 멀리서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듯이 나만 힘들고 내 인생만 이런 것 같은 생각은 이제 집어치워야겠다. 이 정도면 충분히 징징거렸으니까 그만 툭툭 털고 일어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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