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보호사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전날 너무 긴장한 탓에 땀을 많이 흘렸던 나는 실습 셋째 날의 복장은 제일 시원하고 통풍이 잘되는 옷으로 골랐다. 학원에서 8시간을 앉아있을 때도 청바지는 입지 않았지만 더더구나 에어컨이 되지 않는 요양보호사의 복장은 시원해야만 했다. 한여름에 공부를 시작하지 않은 게 너무나 다행이었다.
어느덧 익숙해진 어르신들과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자연스레 옆자리에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아직까지 손을 잡거나 스킨십을 하는 것은 어색했지만 조금은 어색함이 풀리고 있었다. 알아서 어르신들이 움직일 때마다 일어나 이동보조를 하거나 필요한 일을 스스로 찾아서 하는 일이 대부분이었다.
실습을 나가고 첫날부터 내 눈에 들어온 노부부가 있었다. 항상 손을 잡고 다니시고 소파에 같이 앉아 노래를 들으시던 노부부였는데 어머니께서 치매가 진행 중이셨다. 이동이나 건강에는 문제가 없으나 치매가
진행되어 전날과 다음날 우리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셨다. 노래도 따라 부를 수 없지만 신나게 박수를 치시는 어머니의 이름이 우연하게도 엄마의 이름과 획하나만 다르고 같았다. 성부터 발음까지 같은 그분이 나는 왠지 정이갔다. 둘째 날은 아버님이 함께 오지 않아서 혼자 계시던 어머니셨다.
다다가 어머니께 아버님은 어디 가셨는지 물었더니 "몰라 아까 화장실 가던데 안와"라며 엉뚱한 대답을 하셨다. 분명 할아버지는 일이 있어 오늘 못 오신다고 하셨는데 말이다. 우리 엄마는 치매가 진행될까 봐 매일같이 색칠공부를 하신다. 치매보다 무서운 병은 없다며 나이 든 분들이 걱정하시는데 안타깝게도 치매가 진행되는 경우가 여성이 많고 요즘은 5~60대에도 빨리 진행이 된다고 한다. 가족을 몰라보는 것은 물론이고 손 씻는 법, 밥 먹는 법, 양치하는 법 등 다양한 방법을 잊어버린다. 여기가 어디인지 화장실은 어디로 가는지를 모르게 되는데 어머님은 말기는 아니지만 중기쯤으로 보였다.
학원에서 배운 것들이 있어 어머니의 상태가 어느쯤인지 알 수 있었는데 다행히도 어머니의 기억 속에 아버님은 남아있었다. 나는 남편과 둘이 살기 때문에 그 모습이 왠지 나의 미래가 아닐까 마음이 쓰였다.
짠해 보이는 어머니는 다행히 난폭하지도 우울하지도 않았고 순하고 밝으셨다. 프로그램을 하는 동안 "나는 못해. 이런 거"라며 박수만 치고 계시는 어머니가 안쓰러웠다. 할아버지가 안 오셔서 우울하시다며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한 시간을 보냈는데 다행히 어머니께서 이동을 할 때 거부하시다가 내가 손을 잡아드리니 일어나 움직이셨다. "어디로 가는 거야?"라며 손을 씻자고 말씀드리니 싫다고 처음에는 거부하시다가 깨끗하게 몇 번이고 스스로 씻으셨다.
오후 간식을 챙겨드리고 앉아 쉬는 동안 자기 옆에 앉아 쉬라며 밝게 웃으시던 어머니였다. 뒤쪽 소파에 앉으니 연신 고개를 돌려 나를 찾으셨다. 물론 다음날 어머니는 나를 기억하지 못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