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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뜰날 Apr 25. 2024

엄마, 나 잘 보고 있지?

참관수업날

"드디어 오늘이야!

엄마를 교실에서 만날 수 있다니 너무 좋아! 있다 만나!"


잠시 후 만나자고 하며 아이는 학교로 들어갔다.


오늘은 딸아이의 2학년 참관수업 날이다.

며칠 전부터 엄마가 오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아이였다. 자기 반 친구들을 소개해 주고 싶고,

만든 화분과 그림들을 구경시켜 주고 싶다고 했다.


어제저녁엔 나에게 무슨 옷을 입을 거냐고 물어봤다.


"글쎄, 무슨 옷 입을까?"라고 내가 물었다.


멋 내는 게 한창인 9세 딸아이는 매일 아침마다 코디를 직접 하는데,

치마를 입는 날이면 언제나 2센티 굽이 있는 하얀색 구두를 신고 간다.

그런 날이면 밤에 종종 다리가 아프다고 하기도 했다.


"구두 신으면 다리 아프니까, 편하게 운동화 신고 와~ 엄마는 운동화 신어도 이뻐~"


라고 말하며 아이가 구두를 신을 때마다 했던 나의 대사에 자기 이름 대신 '엄마'를 넣어서

복사 붙여 넣기를 했다.

그런 후엔 내 옷장을 열어 보라색 상의와  하얀 재킷까지 입으면 되겠다며

운동화에 이게 어울린다며

나름 코디까지 해주며 한술 더 뜬다.





Unsplash의Taylor Flowe

학교에 먼저 딸아이를 보내고 돌아와 평소에 안 하던 화장을 했다. (화장이라고 해봐야 기본팩트 하나 바르고 입술 바르는 게 전부이지만 ) 그래도 처음 선생님과 다른 엄마들을 만나는 자리이니, 기본예의는 갖춰야지 싶었다.


둘째를 등원버스에 태워 보내고 큰아이의 학교로 걸음을 서둘렀다.


비가 부슬부슬 오는 아침이었다. 우산을 쓰고 가니 [투둑투둑] 우산에 비 떨어지는 소리가 제법 좋았고, 선선한 바람도 시원하게 느껴졌다. 어제 금방이라도 여름이 올 것 같은 날씨였는데 다시 이런 선선한 바람이 부는 날씨라니, 봄이 다시 오는 것 같아서 좋았다.


횡단보도를 지나 계속 걷다가 작년 이맘때가 생각났다.


1학년 학부모 참관수업날.


그날 남편은 휴가를 냈다.

같이 옷을 차려입고 옷매무새를 봐주며 학교로 향했다.

평일 오전 참관수업을 위해 부부가 나란히 학교에 가는 처음었던 초보 학부모였다.

아이의 첫 학교생활을 같이 보는 것 자체가 긴장되기도 하고 설레기도 했다.


아이의 자리도 궁금했고 어떤 얼굴로 지내는지도 궁금했다.

담임선생님이 궁금했고, 친구들과 노는 아이의 모습까지... 그땐 모든 게 궁금했다.


아이의 1학년 교실을 찾아가 맨 뒷자리에 남편과 자리를 잡고 아이를 바라보았었다.


집에서는 밝고 활기찬 아이가

교실에서는 조용한 아이였고,

자기주장을 잘하는 아이가 학교에서는 차분한 아이였다.


아이의 1학년은 그렇게 아이답게 시작되고 있었다. 

편안한 집에서의 모습과 아이의 사회생활인 학교생활 모습은 조금 다르다는 것을 확인하는 날이기도 했다.




아이는 2학년이 되었고, 남편은 휴가를 내지 않았다.

남편의 마음이 변한 건 아닐 것이다.


딸아이가 자주 이야기하는 남자아이가 궁금했을 것이고,

어떤 모습으로 수업을 듣고 교실 뒤편에서 아이가 만든 작품을 열심히 찾아보는 아빠였을 것이다.

하지만 본인이 동행하지 않아도, 내가 잘 보고 관찰하여 아이의 이야기를 전해줄 것을 알았기에 바쁜 회사일에 무리해서 연차를 내지 않은 것이다.


어쩌면 아이가 1학년을 잘 보내고 2학년이 된 것처럼

우리도 잔뜩 긴장했던 초보 학부모 딱지를 같이 뗀 것일지도 모르겠다.


2학년 3반.

아이 교실 문 앞에 도착했다. 안면이 있는 아이친구 엄마와 눈인사를 하고 그 엄마 옆으로 자리를 잡았다.


아이는 4 분단 맨 앞자리에 앉아 있었다.

선생님의 소개를 듣고 처음 얼굴을 뵈었다. 한 번도 통화를 한 적이 없고, 아이상담도 한 적이 없었기에 평소에 선생님이 좋다는 아이의 말에 선생님이 가장 궁금했었다.


상냥한 목소리와 좋은 인상을 가진 분이셨다. 아이의 말대로 친절하신 분처럼 느껴졌다.

직접 선생님의 얼굴을 보고 목소리를 들으니 더 안심이 되는 기분이었다.


책을 읽고 골든벨 퀴즈를 했다. 질문을 하며 다섯 번 정도 아이들의 의견을 말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아이는 한 번도 손을 들지 않았다.

그런 모습이 걱정되거나 초조하진 않았다. 손을 드는 것과 들지 않는 것에 의미부여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안다.


아이는 아이대로 잘 지내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분단별로 앞에 아이 한 명 한 명 모두가 나와 발표를 하는 시간도 있었다.

아이가 작은 목소리지만 자기가 쓴 글을 끝까지 말하는 것을 보았다.

2학년이 되더니 더 야무져진 모습이다. 많은 학부모들 사이에서 아이가 긴장한

모습이라는 게 나에게 느껴졌지만 그래도 용기 내서 말하고 있다는 것을 엄마인 나는 안다.


모두가 한 명씩 발표하는 시간에 아이가 자주 이야기했던 친구들의 모습을 처음으로 마주 했다.

아이의 말로만 전해 들은 친구들을 만나는 것도 반갑고 즐거운 일이었다.

이제 어디선가 마주치면 나도 아이 친구와 반갑게 인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업중간중간 두어 번 정도 아이는 나를 확인하듯 뒤돌아 보았다.

그 모습을 놓치지 않고 아이와 눈을 마주쳤다.


[엄마, 나 잘 보고 있지?] 

아이가 눈으로 말하는 것 같았다.


[그럼! 잘 보고 있어. 아주 잘하고 있네. 우리 딸! ] 

눈빛으로 아이에게 웃어 보이며 마음으로 화답했다.



40분 수업시간이 빠르게 지나갔다. 수업시간이 끝나고 아이는 나에게 와서 안겼다.

나도 많은 학부모들 시선에 긴장했을 아이를 오래 안아주었다. 잠시 후, 손을 잡고 다니며 아이가 그동안 만든 작품을 소개해주고, 다른 친구들도 소개해 주었다.


어느새 1학년을 잘 마치고 2학년이 되어 이 시간도 잘 지내고 있는 아이가 기특하고 대견했다. 교실을 나오며 오늘은 평소보다 아이에게 더 많은 칭찬과 격려를 해주자고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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