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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ossam Sep 27. 2015

[시험이 끝난 후]

성장통 #part23


시험이 끝난 녀석은 신바람이 났다
요즘 녀석들은 시험이 무슨 큰 벼슬이라도 되는 양
시험만 끝나면 거리로 몰려나가
영화 보고 밥사먹고 노래방 가고 쇼핑하고
당연한 듯 그 기쁨을 만끽한다

그러더니 또 하루는 종일 잠만 잔다
시험 끝난 유세의 절정은
주말에 이르러 꽃을 피운다
하루 종일 리모컨을 다리사이 끼고 누워
백조처럼 뒹굴거리는 이 녀석
그 와중에 손에 들린 핸드폰마저
카톡 카톡 연신 울어댄다

나름 긴장도 했을 테고 피곤도 했을 테니
나는 이제 채찍질을 멈추고
당근을 주는 좋은 엄마 역할에 도전!
풀어주고 쉬게 해주는 게 마땅하다 생각하고
큰 한숨과 엄청난 인내심으로
애써 부드러운 말을 연습 중이지만
참으로 끊임없이 계속되는 뒹굴거림에
참을 인자와 불 화자가 속에서 전쟁을 치른다

자신이 약속한 목표 점수에 도달하지 못해
"엄마~~ 시험만 끝나면~~ 이거랑 저거랑~~"
하던 희망들이 물거품처럼 사라진 녀석에게
나는 선심 쓰듯
몰래 준비해둔 것들을 하나씩 꺼내놓는다


"금요일에 수민이랑 보기로 한 뮤지컬 티켓이야~"
"응?"
"수민엄마랑 미리 얘기해뒀으니까 재밌게 보고와~"
"우왕~~"
"그리고 내일은 엄마랑 미용실 가자~~"
녀석의 입이 귀에 걸렸다


지나간 것을 어쩌랴 담에 더 잘하면 되지
그런 생각이 들기까지

못난 엄마 속은 삼일쯤 걸렸나 보다 
그래도 첫 시험 때 열흘쯤 걸린 것에 비하면

이 정도면 스스로 대견하다 생각한다


다만 그것들이 시험에 대한 보상이 아니라는 것을

녀석이 알기를 바란다

그렇게 조건을 달지 않더라도 해주고 싶었던 것들이고

제 딴에는 몇 주 동안 인내하고 노력하고

최선을 다했으니

잠시 쉬면서  재충전하는 이유로도 충분한 것을


자신을 위한 공부를 하면서 보상을 바라는 건

공부의 주체가 잘못되어 있기 때문이다

무엇이든 아이의 노력에 대한 쉼 이어야지

결과에 대한 보상이 되는 것은 원치 않는다

스스로 목표를 정하고 도전했을 때

실패와 좌절도 성취와 희열도

모두가 녀석에겐 어떤 선물보다도

값진 보상이 될 거라 믿는다


부모도 사람인지라

조금만 더 노력해서 잘 해줬으면 하는

버리지 못한 욕심을 드러냈던 것이 부끄러워

내려놓고 지켜보자 녀석을 믿어보자

매 시험마다 애를 쓰지만 과정도 결과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나도 녀석과 함께 매번 시험을  치르는 기분이 든다

이번 시험 마음 비우기 내 점수는

과정(시험 전 지켜보기) 70점,

결과(점수에 쿨해지기) 50점 정도 되려나...

아직도 낙제를 면치 못했다




이번엔 지나가다 신발가게 앞에 차를 세운다
"샌들 보고 가자~"
"진짜? 그럼 이유비 샌들로 사주라~~"
"그게 무슨 샌들인데?"
"가서 보면 알아~"
한걸음에 달려가 녀석이 말한 신발 앞에 선다
"이거?"
"응~ 예쁘지~"
"이건 굽이 너무 높은데? 안 되겠다~ 딴 거 보자~"
"이게 젤 예쁘단 말야~"
"높은 거 신을 나이는 아직 아니지~
평소에 많이 신으려면 낮은 거 사자

발도 아프고 키도 안 크고~~"
이미 녀석의 귀엔 내 말은 안 들린다
"그래도 다른 거 신어봐~"
일단은 이것저것 주는 대로 신어는 본다
"이게 젤 예쁘다~ 편해 보이고~"
"색이 맘에 안 들어~"
"이건?"
"바닥이 딱딱해~"
예상했던 대답들로 시간만 흐르고 결국 제자리
"이건 편하게 매일 신을 수가 없어~

더 크면 사줄게~"
"놀러 갈 때만 신을게요~
평생 이것만 신을 테니까 커서 안 사줘도 돼~~ 응?"
"몰라~ 그럼 니 맘대로 해~

대신 아무 때나 신으면 알지?"

한참을 투드락 거리다가
결국 나는 예쁘지도 편하지도 않은 것을 산다고

구시렁거리며 결제를 하고
차까지 걸어오면서
유치뽕짝 말도 않고 심술을 부려본다
쿨하게 기분 좋게 쏘고 싶었는데ㅜㅜ
엄마 기분 아랑곳 않고 신이 난 녀석은
이미 승리자다

집에 와 정리를 하면서도
한참 높은 굽을 보니 한숨이 절로 난다

입술엔 빨간 틴트 굽 높은 샌들까지
머리부터 발끝까지 빨리 어른이 되고 싶은 이 녀석
'그럴 때지 그럴 때야~'

자식이기는 부모는 없다고 했던 말을 되새기며

녀석을 이해해보려고 열심히 애쓰고 있는 나를 본다








친구랑 맛난 거 먹고 들어온다던 녀석,
들어오면서 햄버거랑 콜라 한잔을 사와
일하고 있는 엄마 책상 위에 슬쩍 놓고 간다
"이거 엄마 거야?"
"응~"
이 녀석 내심 미안했던 걸까


그래도  엄마를 까먹지 않았다는 것 만으로
다시 기분이 좋아져
햄버거를 한 입 베어 문다

좋아하지도 않는 햄버거가 오늘은 꿀맛이다


성장통 #part19 [시험 끝나면~]

https://brunch.co.kr/@brunchxeg/22



글, 사진: kossam


*외모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당연한 나이 - 평범하게 겪어내는 것이 대견하면서도 모두 다 맞춰줄 수 없는 부모역할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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