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40에 이러고 있다(7)

전환점_산티아고 순례길

by 조운생각

난 인생 다 산 사람마냥 주욱 늘어져 있었다.

나름 열심히 살았지만 그것이 다 무슨 소용이 있냐는 내면의 소리에 수긍해 버렸다.

의미를 잃어버린 인생은 살아도 그만, 안 살아도 그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40줄에 들어섰는데 이젠 뭘 하면서 살아야 하나?

100세 시대라는데 아직도 60년이나 더 살아야 하나?

너무 지겨운 거 아냐?


일상에서 소소한 행복을 찾아보려고 애썼으나 소용없었다.

가족 여행도 가보고, 새로운 일에 매진해 보기도 하고, 운동도 하고, 책도 읽었다.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는 나에게 적지 않은 위로를 주었고 그들의 책을 통해 나름의 힌트를 얻기도 했다. 그들은 내 머리를 한대 세게 치는 듯한 깨달음을 주었지만 결정적으로 내 마음을 양지까지 옮겨 놓아주진 못했다. 한 번 빠진 회의의 늪에서 나는 쉽사리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환경을 좀 바꿔볼까.

당장에 또 다른 나라로 이민을 가거나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기에는 쉽지 않으니 가족에게 양해를 구한 다음 혼자서 길게 여행을 다녀와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유튜브를 뒤적거리다가 내가 사는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전 세계 버킷리스트 10위 안에 드는 유명한 장소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프랑스 남부에서 시작하여 스페인 서쪽까지 걸어가는 780km의 대장정 순례길이란다. 난 별생각 없이 그냥 거기로 한 번 가보면 되겠다 싶어서 프랑스 남부 포(Pau)에 사는 친구에게 연락했다. 나 순례길 걸으러 그쪽에 갈 건데 너네 집에서 한 이틀 정도 머물다가 가도 되겠냐고. 환영한다는 친구의 답장에 지체 없이 출발하게 되었다.




유럽의 저가 항공을 이용하니 우리 집에서 목적지까지 25,000원이면 되었다. 돈이 많이 드는 것도 아니고, 배낭에 집어넣을 것도 많지 않아서 가벼운 발걸음으로 여행을 시작했다. 친구네 집을 거쳐 순례길 출발 지점에 도달하니 몸이 부르르 떨렸다. 약간의 긴장감이 내 몸을 맴돌았다. 3월 마지막 날이라 아직 춥기도 했지만 그보단 내가 이 길을 끝까지 완주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마음 한 구석이 조용히 흔들렸던 것이다. 내 머리는 몰랐지만 마음은 이미 알고 있었을까. 순례길은 나 자신을 마주하기 위한 여정이며, 외로울 수도 있고, 다칠 수도 있고, 그러니 이쯤에서 포기하라는 합리적 유혹이 난무하는 곳이란 사실을.

여러 가지 생각이 꼬리를 물고 지체하게 될 땐 좋은 방법이 있다. 그냥 시작해 버리는 것이다. 아직 젊잖은가!


그렇게 9세기부터 무수한 순례자들이 걸었던 길을 따라 나도 32일간의 순례 여정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 길 위에서 일어난 일들, 만났던 사람들, 나눴던 대화를 일기 속에 기록하였으니 언젠가 그 썰도 풀게 될 날이 있으리라.




나에겐 매듭이 필요했다. 그것이 새로운 삶을 달려가기 위한 운동화 끈 매듭인지, 아니면 여기까지가 끝인가 보오 하면서 이제 인생을 마감하려는 매듭인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매듭을 짓고 싶었다.

대충 얻어걸린 산티아고 순례길을 매듭 삼아 볼까 하여 걸었는데 우연치곤 상당히 운이 좋았다. 그 매듭을 통해 지난 40여 년의 삶을 잘 정리할 수 있었고, 또 다른 40년을 살아갈 인생의 의미를 찾을 수 있었다.

마침표라 여겼던 매듭은 쉼표로 재정의 되어 집으로 향하는 나의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나에게 물었다.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살 생각인가요?”

나는 대답했다.

“어떻게 살 거냐면 말이죠…”


-계속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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