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병, 그리고
자,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지 정리를 좀 해보자.
첫째, 가정환경
액션과 스릴러, 히어로물이 섞여 날마다 드라마틱한 삶을 살아왔다. 그리하여 숨는 법, 눈에 안띄고 움직이는 법, 들었어도 못들은 척하는 법 등을 익히게 되었다.
다음은 성격이다.
본래 성격도 내성적인데 살짝 억눌려서 자라다 보니 더 소심해졌다.

이런 식으로 남은 인생을 살아갈 순 없었기에 하늘이 날 도와 만나게 된
롤모델 한 명으로 인해 내 인생의 방향은 건강하게 설정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나는 말도 잘 못하고 눈물만 많은 연약한 소년이었다.
그런 나 자신이 싫어서
최대한 감추기 위한 노력을 하며 살았다. 어떻게? 말을 많이 하면서. 어떻게든 내 부족한 면을 감추려 포장질을 했다.
하지만 감춘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결국엔 다 뽀록나서 나는 예전보다 더욱 의기소침한 쭈구리가 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성장해야 한다! 전진하자!
뭘 해볼까나~
기타, 피아노, 드럼, 수영, 탁구, 농구, 당구, 장기, 체스, 여행, 독서, 글쓰기 등등 조금씩 익혀나갔다.
그중에 단연 일등은 책 읽기였다. 새 책 냄새가 좋았다. 책이 많으면 마음이 부유해졌고 그 자체로 내가 성장하는 듯한 착각이 일었다. 도서관에 감사했고 서점을 경계해야만 했다. (한 번 가면 나도 모르게 5~6만 원씩 쓰게 되었다)
글쓰기 또한 빼놓을 수 없다.
2011년부터 써온 일기에는 모든 파동이 담겨 있다.
아이가 태어났을 때의 기쁨, 해외생활이라는 낯선 환경 속 긴장과 기대감, 부부싸움, 사업의 어려움, 소소한 행복 … 나라는 존재가 그곳에 고스란히 담겨있어 한 번씩 펼쳐보면 그때로 돌아가 추억과 감상에 젖어 마음이 충전된다.

성장하기 위한 여러 도구들을 익히면서 나는 내 삶을 즐기게 되었다.
취미도 많고, 잔재주도 많고, 넓고 얕은 잔지식도 있어서 누구와 대화를 해도 즐겁고 어딜 가도 즐거운 삶이 되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생겼다.
40이면 아직 젊다. 확실히 젊다. 그런데
그런데 이전과는 다르게 몸이 잘 따라주질 않았다.
성장을 위해 살아가던 내 마음의 추진력은 동일한데
체력과 정신력이 따라주질 않는 것이다.
나 스스로를 다그쳤다. 너 이것밖에 안돼? 넌 늦게 시작했으니 밍기적 거릴 시간이 없어! 얼른 달려!
왜 성장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보단 그냥 사람이면 당연히 성장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식이 머릿속에 꽉 차 버렸다. 그렇게 무리해서 한참을 달렸다. 그런데 역시나. 너무 달렸던 걸까?
결국 난 쓰러져 버렸고, 사업은 물론, 가족도 돌보지 못하게 되었다.
놀라운 것은, 쓰러져서도 난 책을 읽어야 한다는 생각과 더욱 성장하기 위해 잠시 쉬어가는 것일 뿐 서둘러 일어나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 정도면 가히 성장병에 걸렸다고 할 수 있을 정도였다.
걸려보니 이 병의 무서운 점은 다른 사람들을 쉽게 판단해 버린다는 것(저 사람은 책도 안 읽는구만), 나 스스로 만족할 땐 그것이 교만으로 드러나고(나 이 정도는 돼~), 성장을 나와 주변에 늘 푸시하게 된다는 점이다(야, 성장 안 하면 죽은 거야! 알어?).
성장병에 걸려 쓰러진 주제에 여전히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성장은 과정이며 도구이지 그 자체가 목적지가 아님을.
이런 나 자신을 발견한 순간 난 심각한 회의에 빠져버렸다. 그동안 난 무엇을 위해 살아온 걸까? 앞으론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지? 인생에 의미란 것이 있을까? 결국 허무하게 끝나버리는 것을.
쯧쯧쯧...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