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_왜 사냐
어지럽혀진 내 방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거의 모든 에너지가 고갈되어 버렸다. 이렇게는 살 수가 없겠기에 내 감정을 하나씩 정리하면서 느꼈다.
‘나뿐 아니라 주변에 상처와 고통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그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될 수 있다면…’
순수했던 것일까, 철이 없던 것일까. 내 방도 아직 정리 안된 주제에 오지랖을 부려가며 나는 주변 사람들을 위로하고 싶어졌다. 얼마나 외로울까. 얼마나 위로가 필요할까.
나에게만 집중하며 인생을 소모해 버리기 싫다는 생각에 팔을 걷어붙이고 손을 내밀었다.
아침에 갓 구운 빵을 사서 피난민들에게 나눠 주었고, 아픈 사람들을 병원까지 부축해 주었다. 없는 형편에 주머니 털어가며 의사들에게 잘 부탁한다고 환자 대신 굽신거렸다. 남편에게 맞아 눈덩이가 시퍼레진 이웃은 전날 밤 집에서 쫓겨나 밤새 길거리에서 덜덜 떨었다고 한다. 따뜻한 차 한 잔과 식사를 차려주고 눈물을 훔칠 휴지를 한 줌 갖다 주었다. 사업을 시작하게 된 후로는 생계가 절실한 사람들을 필요 이상으로 고용하여 희망을 심어주려 노력했고, 업무 효율성이라는 명분을 들어 그들에게 전인격적인 교육을 실시하기도 하였다.
뭔가 잘 되는 듯하였다. 조금씩 변화되는 사람들과 바뀌어 가는 그들의 표정을 보면서 나 자신도 치유되는 느낌이 들었다. 난 좀 더 욕심을 내었다. 물에 빠진 사람이라면 일단 부자, 빈자, 백인, 흑인 상관없이 일단 건져내고 보자. 불특정다수에게 더 많은 것을 제공하자. 그러다 보면 사람들이 내 주변으로 모이겠지. 내 일에 동참하는 사람들도 생기겠지. 그러면 좀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겠지. 어쩌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무엇에 홀렸던 것일까. 그때의 나는 무슨 착각에 빠져 인류를 구원하겠다고 나선 메시아라도 된 줄 알았나 보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착각은 차가운 현실 앞에서 무참히 깨져버렸다. 빵을 먹으려 줄을 선 사람들은 이미 받은 가진 빵을 감추고 줄을 두 번 서서 받으려 했고 이에 다툼이 일어났다. 아픈 사람에게 약을 사준다고 하자 3년 지난 처방전을 가져오는 사람, 이야기를 잘 들어주니 내게 와서 다짜고짜 눈물부터 흘리며 어머니 수술이 내일인데 돈이 없다는 사람, 아들이 18살인데 직장이 필요하다는 사람, 남편이 필요한데 자기랑 결혼해 줄 수 있냐는 사람… 거기까지는 괜찮았다. 더 심각한 문제는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 일어나게 마련이다.
- 그렇게 해도 그 사람들의 삶은 더 나아지지 않아! 그들을 더 의존적으로 만들고 독립성을 훼손하기만 했지.
- 자기 자신도 못 챙기는 주제에 누굴 챙겨?
- 가족이나 먼저 돌보시지?
- 그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생색은…
- 그렇게 살면 인생의 의미가 있다고? 자아를 확장한다고? 교만이지 그건.
- 니가 뭘 안다고 누굴 위로해.
- 다 좋아. 그래서 이 일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평생 할 거야?
난 다시 내 방으로 돌아왔다. 아직 정리되지 않은 그곳. 한 구석에 주저앉아 멍하게 주변을 둘러봤다. 정말 그랬다. 책 몇 권 읽은 것 가지고 내 삶의 의미를 찾았다고 떠들어대며 이제부터 성장가도를 달리겠노라고 흥분했었지만 이제와 생각해 보니 나는 아직 나 자신 하나도 추스르지 못했던 것이다. 내 옆에 굴러다니는 책을 집어 들었다. <자존감 수업> 읽을 땐 좋았는데, 다시 보니 왜 이렇게 웃기는지. 이게 다 무슨 소용이라고.
열심히 살았는데. 어릴 적 상처를 디딛고 일어서서 회복하고, 더 나아가 다른 이들을 위로하는 멋진 삶을 살았는데. 그것을 이루기 위해 공부도 열심히 했고, 일도 열심히 했고, 실력을 쌓아왔는데. 왜 이렇게 허탈하지?
나는
왜
사는 걸까
저 앞에서 나를 향해 미소 지으며 어서 오라고 손짓하는 이의 이름이 희망인 줄 알았는데 막상 달려가 확인해 보니 어둠의 그림자였다. 그와 진지한 대화를 나누기 시작하면서 나는 그의 말에 점점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