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면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누군가 나에게 ‘재미도 있고, 의미도 있었던 소설을 추천해 달라’고 나에게 묻는다면 나는 한스 라트가 쓴 시리즈물을 자신 있게 권할 것이다.
1. <그리고 신은 얘기나 좀 하자고 말했다>
심리 치료사 야콥은 망해 가고 있었다. 이혼 위기에 월세를 낼 돈도 없었다. 이런 상황에 어느 날 아벨이라는 사람이 찾아와 스스로를 신이라고 소개했다. 그리고 어처구니없게도 그가 야콥에게 상담을 요청해 왔다. 아니, 신이라면서 무슨 상담을, 그것도 말종과 같은 인생을 살고 있는 야콥에게? 야콥은 그를 정신질환자로 여기며 피해버린다. 하지만 아벨은 야콥에게 큰 액수의 상담비용을 제시했고 돈이 궁한 야콥은 그와의 상담을 진행하기로 했다.
그래서, 무슨 일인고? 하며 묻자, 아벨은 자신이 가진 근심을 털어놓는다.
“사람들이 기도를 하면 나는 그것을 들어줍니다. 그런데 문제는, 기도를 들어줬더니 더 이상 나를 찾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들의 기도를 들어줘야 합니까, 들어주지 말아야 합니까?”
들어보니 간단치 않은 문제였다. 여튼 소설은 신 존재와 그의 관점에서 바라본 세상에 대해 재밌게 풀어 나갔다.
2. <악마도 때론 인간일 뿐이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번 책은 악마와 야콥간의 대화가 주를 이룬다. 악마는 야콥의 영혼을 사기 위해 온갖 달콤한 유혹을 제시한다. 그러던 중 악마는 자신이 가진 고민을 야콥에게 털어놓는다.
“예전에는 내가 뿔 달린 괴물처럼 등장하여 사람들을 놀래키기도 하고, 그들을 악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어 공포와 분노로 떨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요즘 사람들은 나보다 더 악해서 내가 할 일이 없습니다. 오히려 그들에게 악의 신기술을 배워야 할 정도입니다. 내 존재가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아무리 자신의 영혼을 사기 위해 침을 흘리며 이빨을 드러내놓은 악마라고 하지만 이런 사연을 들으니 마음이 측은해진다. 여튼 소설은 악마의 입장에서 바라본 인간과 세상에 대해 재밌게 풀어 나갔다.
3. <그리고 신은 내게 도와달라고 말했다>
평화롭게 살아가던 야콥에게 다시 아벨(신)이 나타났다. 오랜만에 만난 그들은 서로 반가워 얼싸안으며 근황 토크를 이어갔다. 그러던 중 아벨은 야콥에게 부탁이 있다고 한다. 무슨 부탁이냐며 반짝이는 눈동자로 야콥은 아벨을 응시했다.
“메시아가 되어주세요”
심장이 멎는 듯한 느낌을 받으며 ‘안되지. 안될 말이지. 도대체 내가 누구라고 모든 인류를 위해 죽는단 말인가?’하며 손사래를 쳤다.
소설은 각종 장치들을 통해 야콥의 인식이 어떻게 바뀌어 가는지, 그리고 종국에는 어떤 결말을 맺게 되는지 보여준다. 야콥은 깨닫게 된다. 메시아라는 것이 모든 인류를 위해 죽는 사람이 아닌, 정반대로, ‘한 사람을 위해서 사는 사람’이라는 뜻을. 주변에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무시하고 지나치지 말라는 것을. 관심을 가지고 그들에게 먼저 손을 내어주는 사람이라는 의미를.
소설은 악마가 실존하냐 안 하냐를 논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야콥과 악마의 대화를 통해 우리가 어떻게 스스로를 기만하며 살고 있었나를 성찰할 수 있도록 돕는다.
신이 있냐 없냐 혹은 신이 인간에게 관심이 있냐는 오래된 철학적 질문을 던지려는 것도 아니다. 그저 인간으로서 가져야 할 숭고한 가치가 무엇일까 하는 고민에 상징적 의미로 ‘메시아가 되어라’ 하고 방향성을 제시해 준 것이다.
내가 30대에 이르기까지 시도했던 좋은 일들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지만 욕심이 과했던 게 사실이다. 성장을 빌미 삼아 정신없는 삶을 살아왔고, 나 자신의 존재 가치를 입증하기 위해 불특정 다수를 도왔다. 그래 이 정도면 됐다. 누가 열심히 살았다고 한다면, 나도 그리 했노라 말할 수 있겠다. 누군가 좋은 일을 했노라 한다면, 나도 그래봤다고 고개를 끄덕일 수 있겠다. 이리저리 돌아가며 이 일 저 일 어느 정도 다 해봤으니 이제는 몸에 힘을 빼고 조용하게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다수의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끼칠 때에는 잘 몰랐다. 한 사람의 가치가 얼마나 큰지를. 그가 상처를 받아 고꾸라진다면 하늘의 별들이 그와 함께 빛을 잃는다. 그가 기뻐서 웃음 짓는다면 그 미소에 바람이 춤을 추고 들풀도 힘을 얻어 꽃을 피운다.
유년기 시절부터 소심해서 눈물만 짜고 있던 나는 그런 내 모습이 싫었다. 드라마 속 주인공처럼 멋지고 박수갈채받는 삶을 원해왔다. 많은 사람들의 인정을 받고 싶었다. 그러한 욕망은 잘 사라지지 않는 듯하다. 하지만 예전과 다른 한 가지는 바로 ‘한 사람을 위해 살려는 마음’이다. 길에서 어려운 이웃을 만나 빵을 사주는 것도 좋지만, 그와 함께 앉아 시간을 보내고,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눈을 마주치며 그의 존재를 인정해 주는 것. 진심으로 응원해 주는 것. 그리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툭툭 털고 그 자리를 가볍게 뜰 수 있는 것. 만약 그가 힘을 내어 다시 일어설 수 있게 된다면 난 길모퉁이에서 몸을 숨겨 ‘됐다’고 조용히 되뇌며 나의 가던 길을 계속해서 걷고 싶다.
40년 넘게 삶을 살면서 인생이 말처럼 그리 쉽지 않다는 것, 그리 낭만적이지만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도 좋다. 한 번 해보고 싶다. 그렇게 살고 싶다. 종교를 뛰어넘은 삶을 살고 싶다.